이사벨 1세 (카스티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주석 → 각주)
37번째 줄:
여왕이 된 이사벨 1세는 우선은 후아나와 약혼한 후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문제에 개입해 온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 [[1479년]] 2월 24일에 승리한 후, 카스티야 영내의 반(反)이사벨 기치를 내세운 친(親)후아나 세력을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토벌해가기 시작했다. 같은 해 남편 페르난도가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라곤의 왕위를 계승하자 [[1492년]]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 즉 [[스페인]](에스파냐) 왕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스페인은 아직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군주끼리 결혼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사벨과 페르난도 두 군주의 공동통치제 성향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아직도 제각기 두 군주의 통치를 받았다. 이는 훗날 이사벨이 죽은 후에 상속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사벨은 자신은 왕비가 아니라 여왕이며, 페르난도보다 더 연상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파일:La Rendición de Granada - Pradilla.jpg|thumb|180px|'''[[그라나다 함락]]''': 백마에 탄 여인이 이사벨]]
1492년 1월,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 아직 남아있던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왕국]]을 제압, 마침내 800년에 걸친 [[레콩키스타]]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 [[무슬림]]과의 전쟁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사벨은 전장을 누비는 남편을 위해 군자금과 물자 조달 등에 국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 위업 덕분에 1496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부터 칭송받은 두 사람은 [[가톨릭 공동왕]](''Los Reyes Católicos'')이라는 칭호를 하사받게 된다. 이후 이사벨은 ‘가톨릭교도 이사벨’(''Isabel la Católica'')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또한 이사벨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콜럼버스]]의 신대륙 진출을 돕기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스페인에 해외 식민지 개척시대가 도래하였으며,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치세를 스페인의 황금시대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콜럼버스를 시작으로 수많은 모험가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되어 그 곳으로부터 얻은 수많은 재물을 통해 스페인은 매우 부유해졌다. 경건한 가톨릭 신자였던 이사벨은 훗날 원주민들에 대한 잔혹한 처사에 매우 마음 아파했다고 알려져 있다.
67번째 줄:
* 사녀: [[아라곤의 캐서린]] - 잉글랜드 왕비
 
== 주석각주 ==
<references/>
 
74번째 줄:
*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9 네이버 캐스트 : 오늘의 인물 - 이사벨 1세]
* [http://www.el-mundo.es/cronica/2004/459/1091455989.html El obispo judío que bloquea a la "santa"]. A report in Spanish about the beatification at [[El Mundo (Spain)|''El Mundo'']]
* [http://www.newadvent.org/cathen/08177a.htm Isabella I in the Catholic Encyclopedia]
* [http://www.fordham.edu/halsall/source/columbus2.html Medieval Sourcebook: Columbus' letter to King and Queen of Spain, 1494]
* [http://www.goldbergweb.com/en/magazine/essays/2004/02/20213_print.php Music at Isabella's cou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