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의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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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대한 의미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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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고대 [[한민족]]은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하여 [[고조선]]·[[부여]]·[[고구려]]·읍루(揖婁)·옥저(沃沮)·예맥(濊貊)·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의 원시 공동체 또는 부족 국가를 형성, 정착 생활을 하면서부터 상당히 발전된 문화를 형성했다.
 
처음 한국의 신화·전설·가요가 구체적으로 불린 자리에 제천 의식이 있었고, 서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생활 모습으로서 [[무속 신앙]](巫俗信仰), 곧 [[샤머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또 수렵 경제에서 농업 경제로 넘어오면서 집단적인 부족 회의와 공동적인 제전으로 제천 의식을 열고, 생명의 근원인 창조신과 더불어 곡신(穀神)을 제사지냈다.
 
이때 각 부족이 모여 단체적으로 가무와 천신지기(天神地祇)를 제사 지냈으니, 비로소 고대 한민족의 예술과 문학의 맹아가 싹텄다.
 
== 고대 사회 ==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명절|명절]] 가운데 [[단오]]와 [[추석]], [[시월보름|시월상달]] 등이 고대 사회의 제천 행사에서 유래하였다.
 
[[고조선]]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열린 제천 행사는 다음과 같다.
 
=== 부여 ===
'''영고'''(迎鼓)는 고대에 지금의 [[만주]]를 중심으로 퍼져 있던 [[부여]]에서 해마다 12월에 행하던 [[종교 의례]]로 온 나라 백성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회의를 열어 며칠을 연이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다 한다.
{{인용문2|부여 사람들은 은나라 정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데, 온 나라 백성이 크게 모여서 며칠을 두고 마시고 먹으며 춤추며 노래 부르니, 그것을 곧 영고라 일컫는다. 또한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길목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으며, 늙은이·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불러 그 소리가 날마다 그치지 않았다.}}
이렇듯이 영고는 부여의 가장 커다란 [[종교]]적 의식이었다. 이를 《[[삼국지]]》에서 제천의식으로 표현하였으나, 물론 부여의 토속신을 제사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여러 부족 연맹 사회에 공통으로 행해지던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모든 사회에서는 추수기인 10월에 행하는 데 대해서 부여에서만 유독 12월인 것은 아마 원시 수렵 사회의 전통을 이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밖에 이 날에는 재판을 하고 죄수를 석방하였다 한다. 가무는 오락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이었지만, 어쨌든 상위층·하위층 구별 없이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이 시대에 씨족 사회의 유풍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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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한 ===
남쪽의 삼한에서는 5월이나 10월 농사의 시필기(始畢期), 곧 처음과 끝을 기하여 5월에는 '''수릿날''', 10월에는 '''계절제'''를 열어 제사를 지내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
{{인용문2 | 마한에서는 매양 5월에 모종을 끝마치고 나서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많은 사람이 떼를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서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節奏)는 마치 중국의 탁무(鐸舞)와 같았다. 10월에 농사일이 다 끝나고 나면 또 같은 놀이를 했다. <br/>원문 : 馬韓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以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上 | [[진수 (서진)|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조(馬韓條) }}
{{인용문2 | 그 풍속이 노래와 춤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슬(瑟)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그 모양은 마치 중국의 축(筑)과 비슷하고, 그것을 탈 때에는 또한 음곡이 있다.<br/>원문 : 俗喜歌舞飮酒 有瑟 其相似筑 彈之亦有音曲 | [[진수 (서진)|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변진조(弁辰條) }}
 
=== 고구려 ===
[[고구려]]의 종교 의식(추수감사제)이자 제천 행사이며 원시 종합 예술인 매년 10월에 열리던 명절로 하늘에 제사지내고 또 여러 사람이 가무를 즐겼다 하며, 이를 '''동맹'''(東盟) 또는 '''동명'''(東明)이라고도 한다.
{{인용문2 | 고구려 백성은 노래 부르기와 춤추기를 좋아하며, 나라 안의 모든 읍(邑)과 촌락에서는 밤이 되면, 많은 남녀가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즐겨 논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서 ‘'''동맹'''’이라 부르고 있다.<br/>원문 : 其民喜 歡舞國中邑落 暮夜男女君聚 相就歌戱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 [[진수 (서진)|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고구려조 }}
{{인용문2 | 나라 동쪽에 큰 수혈(隧穴, 襚穴)이 있어, 10월에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고 수신(隧神, 襚神)<ref>주몽의 어머니로 민족적인 신앙의 대상</ref>을 제사지내며, 목수(木隧, 木襚)<ref>나무로 만든 곡신(穀神)</ref>를 신좌(神座)에 모신다. | [[진수 (서진)|진수]] | 《[[삼국지]]》〈위지〉동이전 고구려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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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제천 행사 ==
고려시대에는 팔관회(八關會)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는 신라의 팔관회를 이어받은 행사로서 만물에 존재하는 신령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였다.
 
또한 원구제(圜丘祭)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는 중국에서 들어왔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成宗)<ref>재위 [[981년]]~[[997년]]</ref> 때부터 행해졌으며, 원구단(圜丘壇)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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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삼국-통일신라의 문학/상고시대 문학/제천의식|제천의식]]}}
 
== 주석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