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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불교는 예술{{.cw}}외교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의 불교〔서설〕#삼국시대의 불교|삼국시대의 불교]]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백제의 불교는 예술·외교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ref> 성왕 때,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538년).<ref>{{서적 인용 |저자= 이은직 |기타= 정홍준 역 |제목= 조선명인전 |연도= 2005 |출판사= 일빛|id=ISBN 8956450889|쪽= 28 |인용문= 백제는... 538년에는 불교를 전파했다.}}</ref> 성왕은 [[긴메이 천황]](재위 539년 ~ 571년)에게 사신과 함께 불상 및 불경을 보냈다. 이때 백제에서 건너온 물품 속에는 불교의 교리는 탁월하나 난해하고, 그것을 믿으면 무한한 복이 있을 것이라는 편지도 있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세계 종교사 입문 | 저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도= 2003 |출판사=청년사 |쪽= 229 |id=ISBN 8972783765 |인용문= 일본에 불교가 도입된 것은 538년 C.E(일설에는 552년 C.E.)이다. 당시의 일본 왕 긴메이(欽明) 천황이 백제의 성왕(聖王 또는 聖明王)이 사신과 함께 보내온 불상 및 불경을 받은 것이 그 시초였다. 이때 백제에서 건너온 물품 속에는 불교의 교리는 탁월하나 난해하고, 그것을 믿으면 무한한 복이 있을 것이라는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ref> 그리고, 백제는 석가불금동상 1구, 번개(幡蓋) 약간, 경론(經論) 약간권을 딸려서 달솔 [[노리사치계]](怒唎思致契) 등을 일본에 파견(552년)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十九|卷第十九 欽明天皇]] |인용문=十三年...冬十月、百濟聖明王、更名聖王。遣西部姬氏達率怒唎斯致契等、獻釋迦佛金銅像一軀・幡蓋若干・經論若干卷。 (13년(552년) 겨울 10월, 백제의 성명왕(혹은 성왕이라고도 한다)이, 서부달솔 희씨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석가불금동상 1구와 깃발 약간, 경전 여러 권을 보냈다. }}</ref> 이 번개는 그 장엄함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일본서기]]》에 기록될 정도이므로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ref>{{서적 인용 | 저자 = 고유섭 |제목= 구수한 큰맛 |출판사=다할미디어 |연도=2005 |쪽=160 |id = ISBN 8989988241 |인용문 = 원래 백제의 공예는 고도로 발달되었나니, 성왕 3년에 일본에 전한 번개(幡蓋)는 그 장엄함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일본 정사에 특히 그 기록이 실려 있는 것만 보더라도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겠고, ...}}</ref> 552년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백제의 많은 학자와 기술자들이 일본에 파견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 이은직 |기타= 정홍준 역 |제목= 조선명인전 |연도= 2005 |출판사= 일빛|id=ISBN 8956450889|쪽= 28 |인용문= 552년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많은 학자와 기술자를 비롯하여 의사나 음악가까지 파견하였다. }}</ref> 577년(위덕왕 24년, 비다쓰 천황 6년)에는 백제에서 일본으로 경론 몇 권, 대대적인 학자와 율사{{.cw}}선사{{.cw}}비구니{{.cw}}주금사 등 승려 집단, 불상 만드는 기술자, 사찰을 지을 목수들이 파견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二十|卷第二十 敏達天皇]] |인용문=六年...冬十一月庚午朔、百濟國王、付還使大別王等、獻經論若干卷、幷律師・禪師・比丘尼・呪禁師・造佛工・造寺工、六人。遂安置於難波大別王寺。 }}</ref>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야사로 보는 삼국의 역사1 | 저자= 최범서|연도= 2006 |출판사=가람기획 |쪽=166 |id=ISBN 8984352411 |인용문= 그 후 위덕왕 24년에 백제왕이 경론 몇 권, 율사律師 · 선사禪師 · 비구니 · 주금사呪噤師 · 조불공造佛工 · 조사공造寺工 등 6명을 보내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 }}</ref> 그 뒤, 금속공예사, 기와 굽는 기술자들까지 건너갔다.<ref>{{서적 인용 |저자= 최용범 |기타= |제목=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날짜=2008 |출판사=페이퍼로드 |id=ISBN 9788992920162|쪽= 48 |인용문=백제는 그 뒤 577년(위덕왕 24년)에 불상 만드는 기술자, 절 건축자를 보냈고, 이어 금속공예사, 기와 굽는 기술자까지 보냈다. }}</ref> 583년에는 [[비다쓰 천황]]의 요청으로 고승 [[일라]](日羅)가 건너갔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二十|卷第二十 敏達天皇]] |인용문=十二年... 今在百濟火葦北國造阿利斯登子達率日羅、賢而有勇。... 冬十月、紀國造押勝等、還自百濟。復命於朝曰、百濟國主、奉惜日羅、不肯聽上。 }}</ref><ref>{{서적 인용 |제목= 한국인의 윤리사상사 | 저자= 이기영 |연도= 2000 |출판사=학문사 |쪽=132 |id=ISBN 8946710926 |인용문= 위덕왕... 30년(583)에는 일본왕의 요청으로 고승 일라(日羅)가 건너갔으며, ... }}</ref> 584년 백제는 다시 왜국에 불상 1구와 미륵상 1구를 보냈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二十|卷第二十 敏達天皇]] |인용문=十三年... 秋九月、從百濟來鹿深臣、闕名字。有彌勒石像一軀。佐伯連、闕名字。有佛像一軀。 }}</ref> 588년(위덕왕 35년)에 백제는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여섯 명, 노반박사(鑪盤博士)로서 [[장덕 (관직)|장덕]](將德) 백매순(白昧淳), 와박사(瓦博士)로서 마나문노(麻奈文奴){{.cw}}양귀문(陽貴文){{.cw}}석마제미(昔麻帝彌) 등 네 명, 화공(畵工) 한 명 등 사찰 건설에 필요한 기술자를 일본에 파견하여 백제의 공예미술이 일본에 널리 전파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廿一|卷第廿一 用明天皇 崇峻天皇]] |인용문=崇峻天皇 ... 元年春三月、... 百濟國遣恩率首信・德率蓋文・那率福富味身等、進調幷獻佛舍利、僧聆照律師・令威・惠衆・惠宿・道嚴・令開等、寺工太良未太・文賈古子・鑪盤博士將德白昧淳、瓦博士麻奈文奴・陽貴文・㥄貴文・昔麻帝彌、畫工白加。 }}</ref><ref>{{서적 인용 | 저자 = 고유섭 |제목= 구수한 큰맛 |출판사=다할미디어 |연도=2005 |쪽=160 |id = ISBN 8989988241 |인용문 = 원래 백제의 공예는 고도로 발달되었나니, ... 위덕왕 35년에 노반박사(露盤博士)로서 장덕(將德){{.cw}}백미순(將德白味淳)의 도일, 와박사(瓦博士)로서 마나부노(麻奈父奴){{.cw}}양귀문(陽貴文){{.cw}}석마제미(昔麻帝彌)의 도일 등 백제의 공예미술이 널리 전파된 것을 알겠다.}}</ref><ref>{{서적 인용 |제목= 고대로부터의 통신 | 저자=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연도= 2004 |출판사=푸른역사 |쪽=285 |id=ISBN 8987787796 |인용문= 《일본서기》에 따르면, 민달천황 敏達天皇 원년(588)에 백제가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여섯 명, 노반박사 露盤博士 한 명, 와박사 네 명, 화공畵工 한 명 등 사원 건설에 필요한 기술자를 일본에 파견하였다고 한다. }}</ref> 602년 [[관륵]](觀勒)이 [[일본]]에 건너가 [[천문]]{{.cw}}[[책력]]{{.cw}}[[지리]]{{.cw}}둔갑방술(遁甲方術) 등에 관한 많은 책을 전하고, 불교를 전파하였고,<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廿二|卷第廿二 推古天皇]] |인용문=十年... 冬十月、百濟僧觀勒來之。仍貢暦本及天文地理書、幷遁甲方術之書也。是時、選書生三四人、以俾學習於觀勒矣。 }}</ref><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삼국의 성립과 발전/고대문화의 발전#관륵|관륵]]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觀勒 백제의 고승. ...문무왕 3년(602) 불교 외에 역본(曆本)·천문(天文)·지리(地理) 및 둔갑방술(遁甲方術)의 책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ref> 일본 최초의 승정(僧正)이 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의 불교〔서설〕#삼국시대의 불교|삼국시대의 불교]]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 그 후 무왕 3년(602)에 관륵(灌勒)이 각종 역서(譯書)를 가지고 가서 일본 최초의 승정(僧正)이 되었다. }}</ref> 이리하여 백제는 [[일본 불교]]의 연원지(淵源地)가 되었으며 아울러 탁월한 불교예술을 진작시켰다.<ref>{{서적 인용 |제목=[[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장=[[: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의 불교〔서설〕#삼국시대의 불교|삼국시대의 불교]] |연도= 2004|출판사=도서출판 범한 |인용문=백제는 일본불교의 연원지(淵源地)가 되었으며 아울러 탁월한 불교예술을 진작시켰다. }}</ref>
 
==주석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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