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녹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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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독립 전쟁 ===
녹스는 영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유의 아들들]]을 지지하고 영국군의 [[보스턴 학살 사건]]을 규탄했다. [[1772년]], 녹스는 보스턴 그레네이더 군단에 지원병으로 입대했고, 1775년에 [[알테마즈 워드]] 장군 휘하에서 [[벙커 힐 전투]]에 참여했다. 그때 녹스는 정찰군에 소속되어 [[조지 워싱턴]] 장군과 알게 되었다. 녹스는 워싱턴에 감명을 받았으며,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파일:Siegeofbostonartillery.jpg|thumb|left|대포를 소달구지에 싣고 보스턴으로 향하는 녹스]]
[[1776년]] 3월에 대륙군이 뉴욕 식민지의 [[타이컨더로가 요새]]를 점령하면서, 녹스는 타이컨더로가 요새에서 획득한 대포를 보스턴 포위전에서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워싱턴은 녹스를 대령으로 임명하고 대포를 타이컨더로가에서 보스턴까지 수송할 것을 명령했다. 녹스와 그 부대는 타이컨더로가로 가서 거기에서 [[허드슨 강]] 서안에서 남쪽 올버니까지 소 썰매의 길을 조성했다. 그리고 올버니에서 스프링필드, 우스터를 거쳐 보스턴까지 대포를 날랐다. 수송 작업은 [[1775년]] [[12월 5일]]에 시작되었다. 총 59문의 대포와 박격포를 300마일의 여정을 56일에 걸쳐 옮겨져 [[1776년]] [[1월 24일]]에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그 대포는 영국군을 내려다보는 도체스터 고지에 배치되었다. 그 결과, 영국군은 [[1776년]] [[3월 17일]]에 [[핼리팩스]]에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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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는 매사추세츠 토마스톤 (현재 메인) 근교에서 노년을 보냈다. 녹스는 낙농과 조선에 종사했다. 녹스는 국무장관을 물러났지만, 매사추세츠 의회 하원 의원을 지냈다. 1806년, 녹스빌은 매사추세츠 유니온(현재 메인 주)의 친구를 방문했을 때, 잘못 삼킨 닭 뼈가 창자에 박혀 버렸다. 녹스는 3일 후 1806년 10월 21일, 복막염을 일으켜 사망했다. 녹스의 시신은 토마스톤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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