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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형'''(尹元衡, [[1509년]] ∼ [[1565년]] [[11월 18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외척이자 문신으로, 파산부원군 [[윤지임 (1475년)|윤지임]]과 전성부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李氏)의 넷째 아들이자 [[문정왕후]]의 남동생이며, [[윤원량]]·[[윤원로]]의 동생이며 [[소윤]](小尹)의 영수이다. [[조선 명종|명종]]의 외숙으로 [[윤임]], [[김안로]], [[이량 (조선)|이량]], [[심통원]] 등과 함께 인척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며 [[을사사화]]를 날조했다. [[정난정]]은 그의 첩이었다.
 
[[1533년]](중종 28년) [[별시]][[과거 제도|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으로 관직에 올랐으며 외조카인 [[조선 명종|경원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친족인 [[윤임]]<ref>윤임은 아버지 윤지임과 8촌 종형제간으로 그에게는 9촌 삼종숙이 된다.</ref>, 처당숙 [[김안로]](金安老) 등과 갈등했다. [[김안로]]의 공격으로 유배되었으나 복직, [[1544년]](인종 즉위년) 좌부승지와 좌승지, 공조참판을 지냈으나 [[송인수]]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45년]] 인종이 죽고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복직했다.
 
그 뒤 예조참의를 거쳐 [[1546년]] 이기(李芑), 정순붕(鄭順朋), 임백령(林百齡) 등과 함께 대윤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이때 [[사림파]]를 연루시켜 사림 세력에게도 정치적 타격을 가하였다. 이어 [[양재역 벽서 사건]]을 빌미로 [[정미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정계에서 숙청한다. [[1547년]]에는 《중종실록(中宗實錄)》, 《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을사사화]]에 가담한 공로로 서원군에 봉해진뒤 지중추부사와 [[예조]],[[이조판서]] 특진관 등을 거쳐 [[의정부]][[우의정]]과 [[영의정]]을 지내고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으로 진봉하였다. [[1560년]] 그의 권력확장을 경계한 명종은 자신의 처외삼촌인 [[이량]]을 등용하여 그를 견제하려 했으나 이량 역시 자기 세력 축재에 치중하면서 정국은 혼란으로 치달았다.
 
사후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나 [[1907년]](융희 1년) [[11월]]부터 당시 내각 [[총리대신]]이던 [[이완용]]의 건의로, [[1908년]] [[1월]] 작위와 직책이 회복되고, [[4월]] 죄적에서 삭제되어 명예회복하였다. [[조선 중종|중종]]의 처남이자 사돈이었으며, 정적인 [[김안로]]는 처당숙이고, 대윤(大尹)의 영수 [[윤임]](尹任)은 그의 9촌 아저씨였다. [[1907년]] [[총리대신]] [[이완용]]의 건의로 사면 복권되었다.<ref name="soon0804">순종실록 2권, 순종 1년(1908 무신 / 대한 융희(隆熙) 2년) 4월 30일(양력) 3번째기사 "죽은 좌의정 한효순 외 77명의 관작을 회복시켜 줄 것에 관하여 보고하다"</ref> 자는 언평(彦平), 본관은 [[파평 윤씨|파평]](波平)이다. [[경기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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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7년 인종의 사돈인 [[김안로]](金安老)에 의해 파직, 유배되었다가 이 해 김안로가 사사되자 풀려나왔다.
 
[[1543년]](중종 38년)에는 중국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연경]]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했다. 귀국 후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지로 승진, 다시 [[좌승지]], [[공조]][[참판]] 등으로 승진했다. [[1544년]] [[조선 중종|중종]]이 병으로 죽고 [[장경왕후]] 소생 태자가 [[인종]]으로 즉위하였다. 또한 그의 조카딸이자 형 [[윤원량]]의 딸이 [[조선 인종|인종]]의 후궁이 되어 입궐, 숙빈 윤씨가 되었다.
 
[[1544년]] [[승정원]]좌부승지로 승진, 좌승지를 거쳐 [[공조]][[참판]]이 되었는데, 인종이 즉위하자 정권을 장악하게 된 대윤의 송인수(宋麟壽)의 탄핵으로 삭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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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사화와 집권 =====
{{참고|을사사화}}
명종이 즉위하자 윤원형은 크게 세력을 얻어, 1545년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 일파와 많은 선비들을 죽였다. 이 공로로 보익공신, 위사공신 등에 책봉되었다. 이때 윤원형 일파는 [[윤임]]이 자신의 외조카인 [[계림군]]을 추대한다는 설을 퍼뜨렸고, [[정난정]]은 윤원형의 사주를 받고 이를 [[문정왕후]]에게 전했다. [[윤임]]은 귀양가던 길에 [[충청북도]] [[충주시|충주]]에서 사사당했다.
 
윤원형은 이때 [[윤임]]과 같은 외척 세력과 봉성군, 계림군 등과 같은 종친 세력 뿐만 아니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림들도 대거 같은 세력으로 몰아 처형했다.<ref name="deok01"/> 자신에게 역모의 누명이 돌아오자 두려웠던 [[계림군]]으느 도망치던 중 붙잡혀서 살해되었다. 이어 [[이기 (1476년)|이기]] 등과 함께 [[사림파]]를 제거할 계획을 세워 [[사림파]] 역시 [[윤임]]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체포, 투옥, 사형에 처한다.
 
이 공로로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이 되고 이어 그해 [[9월]]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관에 녹훈된 뒤 [[한성부]][[우윤]] 서원군(瑞原君)이 되고, 그해 12월 [[호조]][[참판]]이 되었다. 윤원형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양재역 벽서 사건을 일으켜 미처 제거하지 못한 윤임의 잔존 세력과 나머지 사림 세력을 모두 조정에서 몰아냈다.<ref name="deok01"/>
 
===== 양재역 벽서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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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윤지임 (1475년)|윤지임]](尹之任, [[1475년]] - [[1534년]])
*** 어머니 : 전성부대부인 [[전의 이씨]](全城府夫人 全義李氏, [[1475년]] - [[1511년]])
**** 형 : [[윤원개]](尹元凱, ? - ?)
***** 조카 : 윤기(尹紀)
***** 조카 : 윤강(尹綱)
***** 조카 : 윤씨, 구윤(具潤)의 처
**** 형 : [[윤원량]](尹元亮, [[1495년]] ~ [[1569년]])
***** 조카 : 윤소(尹紹, [[1515년]] - [[1544년]])<ref> 2002년 11월 파평윤씨 선산에서 발견된 윤씨 미이라의 친정아버지이다. 윤씨 미이라는 문정왕후의 친정 종손녀이며, 인종후궁 숙빈윤씨, 조선명종 등의 조카딸이었다.</ref>
***** 조카 : 윤찬(尹纘)
***** 조카 : 윤치(尹緻)
***** 조카 : [[숙빈 윤씨]], [[조선 인종|인종]]의 후궁
**** 형님 : [[윤원필]](尹元弼, [[1496년]] ~ [[1547년]])
***** 조카 : 윤윤(尹綸)
***** 조카 : 윤위(尹緯)
***** 조카 : 윤회(尹繪)
***** 조카 : 윤집(尹緝)
**** 형님 : [[윤원로]](尹元老, ? ~ 1547년)
***** 조카 : [[윤백원]](尹百源, 1528 - 1589)
***** 조카 : 윤천원(尹千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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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평윤씨 대동보
 
== 주석각주 ==
{{글로벌세계대백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