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로베르 자크 튀르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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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고의 실각의 직접적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자크 네케르]]가 왕비에 대한 공격이 포함된 날조된 편지를 왕에게 보이고, 튀르고의 무능함을 보이기 위해서 왕 앞에서 튀르고의 예산안에 대한 논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튀르고의 사임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압력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모르파]]의 음모가 원인이라고도 한다. [[1776년]] 4월 [[크레티앵 기욤 드 라무아뇽 드 말제르브|말제르브]]가 사임한 후 튀르고와 모르파는 말제르브의 후임 문제로 다투었고 이 과정에서 튀르고가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르파를 심하게 비난한 일로 인하여 결국 튀르고는 모르파를 적으로 두게 되었다. 원인이 어쨌든 간에, 너무 많은 적을 두게 된 튀르고의 사임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튀르고 자신은 그의 개혁 정책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더 오랜 기간 동안 재정총감으로 남아있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776년]] [[5월 12일]] 튀르고는 해임되었다. 해임 직후 튀르고는 [[라 로슈 기용]]에 위치한 엥빌 공작부인의 [[샤토]]에 머무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 시|파리]]로 돌아왔다. 그는 파리에서 남은 일생을 과학과 문학 연구에 매진하였고 이로 인해서 [[1777년]] 인문학 학회인 Académie des Inscriptions et Belles-Lettres의 부회장이 되었다. 튀르고는 [[1781년]] [[3월 18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 주석각주 ==
{{commons|Anne Robert-Jacques Turgot}}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