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관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주석 → 각주)
8번째 줄:
미국의 외교정책은 고립주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병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하고, 주도함으로써 고립주의를 탈피하려 했으나,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신고립주의 시기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세력균형, 집단 안전보장이라고 하는 3개의 외교노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세력균형 정책이 유럽의 권력 정치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거부되었으며, 집단 안전보장정책은 새로운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이 세력균형 정책과 집단 안전보장정책을 명백히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되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보다 익숙하고 안전하게 보이는 고립주의로의 도피를 선택했던 것이다. <ref name="글로벌 국제정치 미국의 정치"/>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정치에 적극 참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위치를 떠맡아, [[유엔]]의 창설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냉전의 양상이 초래되자, 미국은 [[유엔]]이라는 집단 안전보장체제만으로는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집단 방위체제와 상호 방위체제의 구축에 노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소위 말하는 봉쇄정책이 등장했으며, 이는 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점차 약화하였으며, '닉슨 독트린' 이후로 급격히 약화되어 그 형태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카터의 등장 이후 모든 국가에 대한 여행제한 철폐를 비롯한 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무장에 의한 평화보다 협상을 통한 평화외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ref name="글로벌 국제정치 미국의 정치">《[[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국 제 정 치/세계각국의 정치사정/미 국#미국의 외교|미국의 외교]]〉</ref> 20세기 중후반의 냉전의 갈등을 겪고 난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인권개선, 민주주의의 신장, 환경문제 등 새로운 범세계적인 문제의 외교 현안화에 노력하면서 유엔 등 다자협력체제를 통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1493-1776)===
14번째 줄:
현재 미국 영토에서의 식민지 ‘개발’은 처음부터 다민족 국가가 될 운명을 예정하듯이 진행되었다. 16세기,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의 탐험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누벨프랑스]])의 영토는 전성기(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이전)에 [[뉴펀들랜드]]에서 [[로키 산맥]]까지 그리고 [[허드슨 만]]에서 [[멕시코 만]]에 이르렀다.<ref>{{서적 인용 |저자=Andrew John Bayly Johnston |날짜=2001 |제목= Control and Order in French Colonial Louisbourg, 1713–1758 |url=http://www.jstor.org/stable/10.14321/j.ctt7zt68f |위치=미국 |출판사=Michigan State Universtiy Press |쪽=8-9 |isbn=978-0870135705 |확인날짜= }}</ref> 그 중, 현재의 미국 영토에 해당하는 곳은 [[누벨프랑스]]의 한 행정구역이었던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로서, [[미시시피 강]] 유역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북으로는 [[오대호]]에서 [[멕시코 만]]까지, 동서로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록키 산맥]]까지 영역이 뻗어 있었다. 영국은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및 [[뉴잉글랜드]]에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이처럼 ‘식민지 개발’은 주로 영국인과 프랑스인 두 민족에 의해 이루어졌고 여기에 더해 [[네덜란드]]가 [[뉴네덜란드]](현재의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를, 스웨덴이 [[뉴스웨덴]](1638년~1655년, [[델라웨어 강]] 사이에 [[델라웨어 만]]으로부터 현재의 [[뉴저지 주]] [[트렌턴 (뉴저지 주)|트렌턴]]까지)을, [[플로리다]]에는 스페인이 [[누에바에스파냐]](현재의 [[미국 남서부]]와 [[플로리다]]가 여기에 속한다.)를, 각각 나름대로 식민지로서 구축했다. <!--요약본 끝-->
 
1607년 영국은 [[버지니아 주|버지니아]]에 [[제임스타운 (버지니아 주)‎|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도 개척하였다. 1620년에는 [[필그림 파더스]] 일행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뉴잉글랜드]]에 속하는 [[로드 아일랜드 주|로드 아일랜드]]에 도착하였다. 북미 동해안을 장악한 영국은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토를 서부로 확대하고 [[13개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신교도가 다수파를 차지하는 북미 식민지는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과 알력이 있었다. 당시에는 종교적, 정신적으로 본국과 분리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에 들어가면, 한랭한 기후로 비교적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동북부에서 [[양조]] · [[조선]] · [[운수]] 등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영국의 경제를 압박하게 되었다. 그러자, 영국은 식민지가 영국 이외에 양털, 실, 모직물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모직 조례]], 1699년)하고, 철을 녹이는 것을 금지([[철 조례]], 1750년)하여 공업의 발전을 방해하였다. 여기서 더 엄격한 [[중상주의]] 정책을 시행하여 식민지를 더욱 압박했다.
 
[[7년 전쟁]]의 일환으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지역에서 벌어진 [[프렌치 인디언 전쟁]](1755~63년)의 종결은 프랑스 · 영국과 미국간의 관계에 변화를 야기하였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에 패함으로써 1763년에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동쪽을 영국에, 서쪽으로는, 플로리다를 영국에 빼앗긴 [[스페인]]에 양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비밀 조약으로 서쪽 영토를 되찾았다. ) 한편, 1763년 [[대영 제국]]은 무려 1억 3000만 [[영국 파운드|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한 해 이자만 450만 파운드에 달하는 액수로 제국 유지비용의 상당액을 《[[인지세법]]》(1765년), 《[[타운젠드법]]》(1767년) 등 각종 과세를 통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충당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대영 제국]]의 결정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대표들의 참여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13개 식민지]]는 “[[무대표 무과세|대표의 참여 없는 세금 부담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격렬한 반대 운동의 전개로 영국은 이듬해 이 세금을 철폐했지만, 이번엔 〈[[차법]]〉으로 차의 무역을 독점하려 했다. 이에 격분한 개척민들은 1773년에 [[보스턴 항구]]를 습격하여,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켰다. 보스턴 차 사건에 충격을 받은 영국은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주민들에게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179번째 줄:
양국은 1940년<ref>{{cite web|url=http://history.state.gov/countries/australia |title= A Guide to the United States' History of Recognition, Diplomatic, and Consular Relations, by Country, since 1776: Australia |quote=<!--The United States recognized Australia on January 8, 1940, when the Governments of the United States and Australia announced the establishment of bilateral diplomatic relations.--> }}</ref> 수교한 이래, 친밀한 동맹국이다.<ref>{{cite web|url=http://www.heraldsun.com.au/ipad-application/gillard-meets-obama-at-apec-in-japan/story-fn6bfmgc-1225953068169 |title= Australia is America's closest ally |quote=<!--"The United States does not have a closer or better ally than Australia," Mr Obama said after the pair's meeting.-->}}</ref> 오스트레일리아는 전통적으로 영국연방 가맹국들과 유대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영국의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되자 1942년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현재와 같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ANZUS 조약과 AUSFTA를 맺고 있다.
 
== 주석각주 ==
{{각주|2}}
{{미국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