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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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san Modern History Museum-01.jpg|섬네일|부산 미국문화원 건물(현재는 부산근대역사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釜山美文化院放火事件)은 [[1982년]] [[3월 18일]] [[최인순]], [[김은숙 (1958년)|김은숙]], [[문부식 (1959년)|문부식]], [[김현장]]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부산근대역사관|부산 미국 문화원]]에 불을 지른 [[반미운동]]의 성격을 띄는 [[방화]] 사건이다. 불은 약 2시간 만에 꺼졌지만, 미국문화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아대학교]] 재학생 장덕술(당시 22세)이 사망했고, 역시 동아대학교 학생 김미숙, 허길숙 외 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학생 내지는 반사회성을 지닌 성격이상자들의 난동으로 홍보하고 대대적으로 [[구속]]했으며, 구속 과정에서 [[천주교]] 신부 [[최기식]]과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관련자들까지 체포하면서 전두환 정권과 종교계 간의 싸움으로도 비화되었다. [[1983년]] [[3월 8일]] 관련자 [[문부식 (1959년)|문부식]], [[김현장]]은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다가, 일주일 만인 [[1983년]] [[3월 15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관련자들의 처벌수위가 낮아지면서 사건이 성공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를 계기로 [[반미주의]] 시위와 미국문화원, 미국대사관에 대한 방화, 투석, 기물파손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전에도 [[반미주의]] 운동은 존재했으나 이 사건 이후로 [[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의 [[반미주의]] 운동을 가속화시켰다. 일명 '''부미방''', '''1차 부미방''', '''부미방 사건'''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