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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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군'''(喬桐郡)은 [[교동도]]를 중심으로 한 옛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강화군]] 교동면과[[교동면]], [[서도면,]] 일대와 [[삼산면 (강화군)|삼산면]]의 일부이다.
 
== 유래 ==
[[교동도]]는 대운도(戴雲島), 고림(古林), 달을신(達乙新)이라고도 불린 바다 한가운데의[[서해]]의 섬이다. 나중에 큰 나무뿌리라는 뜻을 지닌 고목근(高木根)으로 불리고 그게 유래가 되어 큰 오동나무라는 뜻의 교동(喬桐)이 되었다.<ref>喬桐縣{穚桐縣} , 本高句麗高木根縣, 海島也, 景德王改名, 今因之35卷-志4-地理2-23《[[삼국사기|三國史記]]》 </ref>
 
== 역사 ==
* [[삼한]]시대에 소석삭국(小石索國)국이었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ref>[[천관우]]설</ref>. 옛날부터 [[강화도]]의 영향권으로 여겨진다.
 
*백제의 [[백제]]의 영역에 속해 있다가 [[장수왕]] 대에 고구려에[[고구려]]에 점령당해 고목근현(高木根縣)이 되었다.
 
* [[757년]] [[경덕왕]] 16년에 행정제도 개편으로 [[교동현]](喬桐縣)으로 개칭된 후 [[강화군|해구군]](海口郡)의 영현이 되었다.
교동이라는 이름은 그 뒤 변함없이 이어진다.
 
*[[1232년]] 몽고오랑캐의[[몽골]]의 침략으로 고려조정이[[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파천하면서 강화도 일대에 피난민이 대거 유입되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토지와 식량확보등을 목적으로 [[강화도]]와 인근 섬들에 대한 간척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시작된 간척은 시간을 두고 20세기까지 지속되어 현재의 강화도 연안의 해안선을 만들었다.<ref>[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detail&rev=5&query=%B0%AD%C8%AD%B5%B5%20%B0%A3%C3%B4&from=image&ac=-1&sort=0&res_fr=0&res_to=0&merge=0&spq=0&start=5&a=pho_l&f=nx&r=5&u=http%3A%2F%2Fblog.naver.com%2Fbeacon44%3FRedirect%3DLog%26logNo%3D20094646215&thumbnail=http%3A%2F%2Fthumbview01.search.naver.com%2Fthumbnails%3Fq%3Dhttp%3A%2F%2Fblogfiles.naver.net%2F20091202_198%2Fbeacon44_1259686421502EJrT0_jpg%2F%25C1%25B6%25BC%25B1%25B0%25A3%25C3%25B4_beacon44.jpg&signature=24091394709&gdid=90000003_0000000000000004ADBBF7C7 강화도 간척 :: 네이버 이미지검색<!-- 봇이 따온 제목 -->]</ref> 당초에 몇 개의 작은 섬이었던 [[교동도]] 본 섬도 이와 같은 간척으로 현재의 커다란 한 개의 섬이 되었다.
 
*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1629년]] [[조선 인조|인조]]7년 부(府)로 승격되어 수사(水使)가 [[부윤]](府尹)을 겸임하였다.
 
* [[1895년]] [[23부]]府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읍 자체가 폐지되어 [[강화군]]에 합병되었다가 이듬해 복구되었지만 [[군 (행정 구역)|군]](郡)으로 격하되어 [[경기도]]관할 교동군이 되었다. 관할에 본 섬의 4개면과 [[석모도]] 북쪽의 송가면등 5개면이 있었다. 송가면은 당초에 독립된 섬이었다가 나중에 간척으로 지형적으로 석모도에 합쳐졌다.
관할에 본 섬의 4개면과 [[석모도]] 북쪽의 송가면등 5개면이 있었다. 송가면은 당초에 독립된 섬이었다가 나중에 간척등으로 지형적으로 석모도에 합쳐졌다.
 
*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강화군]]에 통폐합되었다. 송가면이 삼산면에 편입되었고 본 섬의 4개면은 화개면과 수정면, 2개면이 되었다.
 
* [[1934년]] , 화개·수정면을 합면하여 지금의 [[교동면]]이 되었다. 현재 법정리 13개, 행정리 17개로 지금에 이른다.
{{참고|교동면|설명=1934년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