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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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1674년]] [[9월 17일]] ([[음력 8월 18일]]) (34세)
|사망지={{국기나라| 조선}} [[한성부]] [[창덕궁]] 재려
|매장지=[[숭릉]]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동구릉]])
|왕비=[[명성왕후]]
|부왕=[[조선 효종|효종]]
|모비=[[인선왕후]] 장씨
|이전 왕=[[조선 효종|효종]]
|다음 왕=[[조선 숙종|숙종]]
|목록=[[조선국왕일람|조선의 제18대 국왕]]
}}
'''현종'''(顯宗, [[1641년]] [[3월 14일]] ([[음력 2월 4일]]) ~ [[1674년]] [[9월 17일]] ([[음력 8월 18일]]), 재위: [[1659년]] ~ [[1674년]])은 [[조선]]의 제18대 [[왕|임금]]이다. 시호는 '''현종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이며 이후 존호가 더해져 정식 시호는 '''현종소휴연경돈덕수성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顯宗昭休衍慶敦德綏成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이다. [[휘]]는 李棩(이연), 본관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자는 경직(景直). [[조선 효종|효종]]의 장자로 어머니는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 [[인선왕후]]이다. 비는 청풍부원군 [[김우명]]의 딸 [[명성왕후]]이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 유일하게 외국([[청나라|청]])에서 출생한 왕이고 왕비 외의 후궁을 1명도 두지 않은 검소하고 소박한 조선의 왕이기도 하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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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SCF4465.JPG|thumb|right|250px|현종의 [[숭릉 (조선)|숭릉]]]]
 
현종은 재위기간중 양란을 겪으면서 흔들렸던 조선왕조 지배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선왕인 효종이 추진해오던 명분론적 북벌은북벌론은 중단했으나 군비강화에 힘써 1665년 통제영(統制營)에서 [[불랑기]](佛狼機) 50정, 정찰자포 200문을 만들어 [[강화도]]에 배치했으며, 1669년에는 어영병제(御營兵制)에 의한 훈련별대(訓練別隊)를 창설했다.
 
재정구조의 재건을 위해서는 호구수의 증가와 농업의 발전, 조세징수체계의 확립에 노력했다. 우선 호구의 증가를 위해 1660년 양민의 삭발과 입승(入僧)을 금했으며, 이듬해 도성 내의 자수(慈壽)·인수(仁壽)의 두 사찰을 폐지하고 어린 승려는 환속하게 했다. 1670년 산간지방의 유민을 단속하여 호적에 편성하고, 1672년 국경지대의 범월인(犯越人)을 처벌하는 법을 정했으며, 호구 장악을 위해 오가작통사목(五家作統事目)을 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