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타리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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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출생지 = [[서울]]<ref name=faithweb>http://newsaints.faithweb.com/martyrs/Korea1.htm</ref>
|사망지 = [[서울]]
|직업 = 순교자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그들 중 [[조 막달레나]]가 [[천주교]]에 가장 열심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는 어머니의 삯바느질을 도왔다. 조 막달레나가 18세가 되자, 어머니 이 가타리나는 그녀를 한 교우에게 시집보내려 했지만, 조 막달레나는 어머니에게 [[처녀]]로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 가타리나는 딸의 결심을 이해할 만큼 독실했지만, 이교도들이 딸을 의심할까봐 염려스러웠다. 왜냐하면, 만일 자신이 [[순교]]하면, 딸이 홀로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딸이 결혼하도록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조 막달레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처녀로 살기를 고집했다.
 
조 막달레나는 가족의 성가신 요구와 사람들의 의심을 피해 [[한양]]으로 올라왔고, 한 [[천주교]] 집안의 [[하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과로]]와 [[영양실조]]로 병이 들었다. 그녀는 병이 완쾌되고, 좀 더 편한 곳으로 이사했다. 그녀는 조금이나마 돈을 벌어 그녀의 어머니한테 보냈다.
 
[[조 막달레나]]는 서른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더 이상 자신에게 시집가라 말하는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며, [[병자]]들을 돌보며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집안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녀는 언제나 사심없이 쉬운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서 했다.
==참고 문헌==
*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2784&keyword=%C0%CC%B0%A1%C5%B8%B8%AE%B3%AA&gubun=01 가톨릭 사전: 이가타리나]
* {{언어링크언어고리|en}} [http://english.cbck.or.kr/Saints103/297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103 Martryr Saints: 이 가타리나 Catharina Yi]
 
{{reflist각주}}
 
[[분류:1782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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