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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술'''(李觀述, [[1902년]] ~ [[1950년]])은 [[일제 강점기]]에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며노동운동가이며, [[남조선로동당]]의 간부였다.
 
[[경상남도]] [[울산광역시|울산]] 출신이다. [[일본]]에 유학하여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경상남도]] [[울산광역시|울산]]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거물급 노동운동가로서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이재유]]를 중심으로 한 [[엠엘파]] 공산주의자 그룹에 가담했다가 [[김삼룡]], [[김단야]] 등과 함께 조직한 [[경성콤그룹]]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남로당의 전신인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을 맡고 있던 중,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대전 형무소]]에서 즉결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29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고, 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지도하는 것으로 사회 운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동덕여고보에는 이관술의 여동생이자 후에 유명한 여성 공산주의 운동가가 되는 [[이순금]]이 재학 중이었다. 이관술은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들을 묶어 조일반제공동투쟁동맹이라는 조직을 건설했다가 체포되어 복역했다.
누이동생이 여성 공산주의 운동가로 유명한 [[이순금]]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거물급 노동운동가로서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1935년]]에 [[엠엘파]]의 [[이재유]]와 함께 《적기》를 출간하는 등 반제동맹을 재건하려 했으나, 곧 이재유가 검거되었다. 이에 신분을 위장하고 지방을 전전하면서 은거하기도 하였으며, [[1937년]]에는 상경하여 영등포에서 노동 운동을 벌였다.
 
[[1939년]]에 그때까지 체포되지 않고 전향하지도 않고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김삼룡]], [[장순명]], [[권오직]], [[이현상]], [[김단야]], 이순금 등으로 구성된 [[경성콤그룹]]을 조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경상남도1945년]] [[울산광역시|울산]]광복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거물급 노동운동가로서이후에는 [[서울박헌영]] 거점으로재건파에 활동했다. [[이재유]]를 중심으로 한 [[엠엘파]] 공산주의자 그룹에 가담했다가 [[김삼룡]], [[김단야]] 등과 함께 조직한 [[경성콤그룹]]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합류해 남로당의 전신인 [[조선공산당]] 재정부장을 맡고 있던 중,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복역하고 있던 [[대전 형무소]]에서 즉결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같이 보기 ==
* [[경성콤그룹]]
*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 참고자료 ==
줄 18 ⟶ 28:
|인용문=
}}
* {{웹 인용
 
|url=http://people.aks.ac.kr/front/srchservice/viewSearchPPL.jsp?pItemId=PPL&type=L&pType=P&pSearchSetId=452552&pTotalSearchCount=1&pPosition=0&pRecordId=00500050004C005F003700480049004C005F00410031003900300030005F0031005F0030003000300039003000320037&pName=C774AD00C2200028674E89C08FF00029
{{토막글|정치인}}
|출판사=한국학중앙연구원
|확인일자=2008-03-07
|제목=이관술(李觀述)
}}
 
[[분류:1902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