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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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위에 귀순한 후 ===
집법관은 황권의 처자에게 형벌을 가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유비]]는 "그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버렸다"라고 말하며 그의 처자에게 이전과 같이 대우했다. [[조비|위 문제]]는 황권이 유비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좋아해 진남장군으로 삼고 육양후에 봉했으며 시중을 더했다. 또 자기와 함께 수레에 탈 수 있게 했다. 이후 황권의 처자가 주살되었다는 헛소문이 돌았으나 황권은 믿지 않았으며, 유비에 대한 충절을 잊지 않아 유비의 죽음에도 기뻐하지 않았다.<ref>삼국지 권43 중 황권전의 본문에는 '홀로 하례하지 않았다'고 하나, 마찬가지로 한때 유비를 섬긴 [[원환]] 역시 하례하지 않았다. 기실, 삼국지 권11 중 원환전의 본문에서도 '(원환이) 홀로 하례하지 않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ref> 이를 안 위 문제가 황권을 놀래키려는놀래려는 생각으로 심문을 하기심문하기 위해 그에게 황궁으로 출두를 명하였으나 혼비백산한 그의 수하들과 식솔들과 달리 태연자약하게 나아가 오히려 위 문제에게 더욱 인정을 받았다.<ref name="s43"/>
 
이후 익주자사를 겸하였고 [[경초 (위)|경초]] 3년([[239년]])거기장군 · 의동삼사로 승진하였다.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경후라 했다.<ref name="s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