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7번째 줄:
길달(吉達)은 [[신라]](新羅) 제26대 군주 [[신라 진평왕|진평왕]](眞平王) 치세 시기에 [[진평왕]]의 사촌 아우 [[비형랑|비형랑(鼻荊郞)]]의 천거를 받아 집사(執事)에 제수되어 국정 집무(國政 執務)를 도왔다 전해지는 천귀(賤鬼)이며 그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이편(奇異編)이라는 대목에 전해진다.
 
[[비형랑]]은 [[579년]] [[3월]]에 [[신라]] 제25대 [[신라 진지왕|진지왕]](眞智王)의 서자(庶子)로 출생하였고 생후 5개월 시기이던 [[579년]] [[8월]]에 [[진지왕]]이 훙서(薨逝)하였으며 이후 [[진지왕]]의 이복 조카 [[진평왕]]은 [[579년]] [[7월]] [[사도태후]]와 [[미실|미실궁주]]가 일으킨 정변으로 보위에 옹립되어 [[584년]]까지 [[사도태후]]의 [[섭정]]을 받은 이후 [[경주시|금성 서라벌 왕궁]] 바깥에 쫓겨나 있던 [[비형랑]]을 불러 귀신의 무리 가운데에서 인간 세계로 와서 조정의 국정 집무를 도울 만한 이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비형랑]]은 길달(吉達)을 천거하였고 [[비형랑]]이 길달(吉達)을 동반하여 [[경주시|금성 서라벌 궁궐]]에 진평왕을 알현(謁見)하자 진평왕은 그에게 집사(執事)라는 관직을 제수하였고, 길달은 충직하게 국정 집무 보좌를 임무하였다. 그리하여 [[진평왕]]은 길달(吉達) 그를 자식이 없었던 각간(角干) [[임종|임종(林宗)]]의 양자(養子)로 출계하여 후사를 잇게 하였고 임종은 길달에게 흥륜사(興輪寺)의 남쪽에 누문(樓門)을 세우게 하였으며 길달은 밤마다 그 문 위에서 잠을 잤고 그런 까닭에 금성 서라벌 사람들과 사량부 사람들은 그 문을 길달문(吉達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러던 어느 날에 길달(吉達)은 갑자기 여우로 변장 둔갑하여 도주하였는데, 이를 알아챈 [[비형랑]]은 다른 귀신들에게 지령을 내리어 길달을 잡아서 주살하였다고 이후 귀신의 무리들은 비형랑이라는 이름만을 듣고도 무서워하며 달아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