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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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유포 ===
법화경은 동쪽으로 전해지기 전에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널리 유포된 경전이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존재했고, 티벳[[티베트 불교의불교]]의 게르크파의 개조가 된 총카파는 자신의 저서 보리도차제대론(菩提道次第大論)에서 죄를 멸하는 방편으로써 법화경을 독경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네팔에서는[[네팔]]에서는 구법경전의 하나로써 다룬다. 중국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을 가장 중요시하여, 저장 성(浙江省)의 천태산 국청사(天台山国清寺)의 천태대사 지의(智顗)는 쿠마라지바가 번역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400년경 서역에서 중국의 수도 장안으로 온 [[쿠처 현|쿠차]] 출신의 승려 쿠마라지바가[[쿠마라지바]]가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한자로 번역하면서부터 법화경은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쿠마라지바의 번역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진언(真言)이나 인(印)을 생략했는데, 훗날 첨품법화경(添品法華経)에서는 이를 다시 추가시켰다.
 
법화경은 빠르게 한반도에도[[한반도]]에도 전래되었다. [[고구려]]의 수도([[427년]] 천도 ~ [[668년]]까지)였던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성돌 사이에서 발견된 1천 자 정도의 글자가 남은 묘법연화경이 현재 북한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백제의[[백제]]의 승려 혜현(惠賢)이 [[수덕사]]에서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독송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고, 신라의[[신라]]의 승려 [[원효]]는 법화경의 교리를 해설한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를 짓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법화경》은 1236년에 간행된 《법화경》과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계환(戒環)이 1126년(인종 4)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7권본이다. 《법화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로는 신라 시대 고승들의 저술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 고승들의 저술이 수십 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계환의 주해가 우리 나라에서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통된 것은 그 내용이 한국불교의[[한국 불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이해가 쉽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존 판본을 살펴보면 고려시대[[고려 시대]] 3종이고, 조선시대의[[조선 시대]]의 것이 117종으로 모두 120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오늘날 학자는 《법화경》을 [[대승불교대승 불교]] 교단이 [[소승불교소승 불교]] 교단과 갈라져 나오면서 형성된 경전으로 추정하며, 초기에는 [[운문]]의 형태로 암송되어 전래되어 오다가, 후에 서술형 문구와 운문의 형태가 융합된 형태를 띠게 되었으리라 추정한다. 따라서 오늘날 학자는 《법화경》은 《[[반야경]]》 이래로 등장한 [[대승불교대승 불교]] [[대승경전|경전]]들의 최고 집대성이자 완성된 시기의 경전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ref>[[틱낫한]],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Opening, the heart of the cosmos ISBN 8976772059-0322</ref>
 
==설법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