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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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비 왕조의 전성기는 [[샤 압바스]] Shah Abbas의 치세(1587-1629) 때였다. 이란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압바스는 이스마일의 증손자다. 선대 왕인 이스마일 2세는 자기 아버지한테 10년간 유배됐다가 탈출해서 정권을 장악했는데, 왕이 된 뒤에 형인 무하마드 호다반데(Mohammad Khodabande)만 남기고 친족은 물론 아비의 신하들까지 모두 도륙해버린다. 공포 정치에 질린 근위대가 호다반데를 옹립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발각됐고, 압바스의 형 헤이다르마저 반란군을 이끌다 전사한다.
 
압바스는 10살 어린 나이에 반란군 지도자로 추대된다. 작은 아버지에 맞서 왕위를 차지하기까지 압바스의 드라마는 '용의 눈물' 같은 영웅신화 겸 전쟁 이야기다. '타고난 군사전략가'인 압바스는 일단 '적의 적'인 오스만과 강화를 맺어 국경 분쟁을 일단락 지은뒤 동쪽 우즈벡을 격퇴시킨다. 그리고 - 오스만과의 전쟁이다. 이라크, 그루지야조지아, 코카서스를캅카스를 탈환해 버린다. 정치적으로는 개혁가였다. 사제들과 귀족들의 사병(私兵)을 혁파하고 관료제를 강화하여 중앙집권제를 공고히 했다- 마치 왕건의 행로처럼, 그는 왕조의 창시자처럼 개혁을 강행한다. 그 덕에 정교 분리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종교에 독립적인 위계 질서가 만들어졌다.
 
이란은 다시 동서양 교역 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전국 도시를 잇는 도로망과 숙박 시설을 만들어 안전을 보장하고 비단 무역을 독점, 국가 재정을 확충한다. 압바스는 바레인과 호르무즈 해협 섬들을 점령하고 인도양의 포르투갈 세력을 격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