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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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1월 21일]], 혁명 재판은 [[루이 16세]]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단두대로 [[참수]]형에 처했다. 그 해 [[7월]]에는 왕위계승자인 [[루이 17세|루이 샤를]]이 어머니와 고모에게서 떼어 놓아졌다. 그해 [[8월 1일]]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콩세르쥬리 감옥으로 이감된 뒤, 10월 초에 공개 재판을 받았지만, 결과는 처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민족주의에 깊이 물든 혁명기의 민중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여자였고 반역자였다. [[1793년]] [[10월 15일]], 그녀는 혁명 재판으로부터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다음날인 [[10월 16일]], [[콩코드 광장]]에서 남편의 뒤를 따라 [[단두대]]에 의해 참수당했다.
참수형 당일, 마리 앙투아네트는 특별 죄수로서 거름통을 싣는 짐수레에 실려 처형장으로 끌려갔다(루이 16세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콩세르쥬리 감옥에서 나올 때 그녀는 머리카락이 짧게 깎여져 있었으며 두 손은 뒤로 묶여져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답게 품위를 중시했던 그녀는 반혁명의 혐의로 3일 간 받은 심문 내내 의연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였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혁명 직전, 마리 앙투아네트는 편지글에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남겼고, 사형장에서 사형 집행인의 발을 실수로 밟아버렸을
기본적으로 단두대로 처형할 시에는 사형수의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하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는 얼굴을 일부러 위로 향하게 해서 위에서 칼날이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진위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는 그 당시 그녀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증오심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형집행일 전날 머리카락이 하룻밤만에 하얗게 세어버렸다는 설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그런 급속한 변화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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