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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한식'''(寒食)은 [[동지]]가 지난 후 105일이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 [[4월 5일]] 또는 [[4월 6일|6일]]에 해당한다. [[청명]](淸明)과 같은 날이 되거나 하루 뒤에 되기도 하므로 옛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어 하루 사이라 큰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식에는 술·과일·국수·떡·탕·포 등 여러 음식을 만들어 산소에 가져가서 제사를 지낸다. 또한 보자기에 싸간 낫으로 풀을 베거나(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히기도 한다.
[[동지]]가 지난 후 105일이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 [[4월 5일]] 또는 [[4월 6일|6일]]에 해당한다.
'''한식'''(寒食)은 [[동지]]가 지난 후 105일이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 [[4월 5일]] 또는 [[4월 6일|6일]]에 해당한다. [[청명]](淸明)과 같은 날이 되거나 하루 뒤에 되기도 하므로 옛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어 하루 사이라 큰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한식에는 술·과일·국수·떡·탕·포 등 여러 음식을 만들어 산소에 가져가서 제사를 지낸다. 또한 보자기에 싸간 낫으로 풀을 베거나(이것을 벌초(伐草)라 한다)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히기도 한다.
 
한식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춘추 시대]] [[진 (춘추, 晉)|진]](晋)나라에 [[진 문공|문공]]이란 왕자가 있었는데 임금이 죽고 나라 안이 어수선해지자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되었다. 문공의 충성스런 신하 [[개자추]]는 문공의 허기를 채워 주기 위하여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구워 먹이기도 하였다. 나중에 임금이 된 문공은 개자추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개자추를 불렀으나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문공은 산에 불을 질렀으나 그래도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불타 죽었다. 문공은 너무 가슴이 아파 해마다 이날이 되면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충성심을 기리고자 불을 때지 말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한식날이 되면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고자 불을 지펴서 따끈한 밥을 해 먹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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