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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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부터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한 정치탄압에 항의하는 광주시민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신군부 세력은 민주화 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주동자로 김대중을 지목하여 내란혐의로 기소했다. 신군부는 두달여의 고문을 통해 관련자의 진술을 조작해냈다.
 
1981년 1월 대법원은 군사재판에서 김대중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으나, 당시 김대중이 "이 땅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 정치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 법정 최후진술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전두환에게 친필 앙망문을《[[앙망문]]》을 보내며 적극적으로비록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정치판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며 선처를 구하였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레이건 행정부, [[미국 의회]]와 심지어는 당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세계 각국 지도자와 종교인, 인권단체들로부터 김대중 사형 중단 압력이 거세어짐에 따라 이듬해인 [[1981년]] [[1월 23일]] 김대중의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얼마 후에는 20년형으로 다시 감형되었다.
*《[[앙망문 전문]]》
*전두환대통령 각하, 국사에 진념하신 가운데 각하의 존체 더욱 건승하심을 앙축하나이다. 각하게서도 아시다싶이 본인은 교도소생활이 이년반에 이르렀아온데 본래의 지병인 고관절변형증과 이명 등으로 고초를 겪고 있으며 전문의에 의한 충분한 치료를 받고자 갈망하고 있읍니다. 본인은 각하게서 출국허가만 해주신다면 미국에서 이, 삼년간 체류하면서 완전한 치료를 받고자 희망하온데 허가하여 주시면 감사천만이겠읍니다. 아울러 말씀드릴것은 본인은 앞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절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으며 일방 국가의 안보와 정치의 안정을 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음을 약속드리면서 각하의 선처를 앙망하옵니다.1982년 12월 13일 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