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헤이우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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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우드는 노동자들의 궁핍한 경험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사상을 가장 편안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는 복잡한 경제이론을 간단한 말로 번역하여 노동자들 사이에 전파시키는 데 능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의 방대한 저술들의 핵심을 다음과 같은 단순한 명제로 증류시켰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1달러를 가지게 되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1달러만큼 일을 하고도 그 돈을 받지 못한 것이다.”<ref name=carlson-146>Carlson, ''Roughneck,'' pg. 146.</ref> 헤이우드는 마르크스의 저술들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불손하고 해학적으로 다루었다. 위험한 광산 노동을 하며, 또 경찰이나 민병대와 숱한 주먹다짐을 주고받으며 얻은 흉터들을 가리켜 헤이우드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자본]]》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내 몸은 자본의 흔적들로 덮여 있다.”<ref>J. Anthony Lukas, Big Trouble: A Murder in a Small Western Town Sets Off a Struggle for the Soul of America.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97; pg. 233.</ref>
 
헤이우드는 [[노사관계위원회]]에서 사유재산이 존엄하다는 주장에 대해 자본가들의 재산은 그저 “체불된 노동, [[잉여가치]]”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고 대꾸한 데서부터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뿌리를 찾는다.<ref>Haywood, ''The Autobiography of Big Bill Haywood,'' pg. 286.</ref> 그런 한편 이 위원회에서 헤이우드는 IWW의 사상을 마르크스 및 사회주의 정당들의 그것과 비교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산업의 국가 소유를 옹호한다는 것을 위원회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헤이우드는 산업은 노동자들에 의해 소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지점에서 그들과 자신 사이의 매우 분명한 차이를 알게 되었다고 자서전에서 술회한다.<ref>Haywood, ''The Autobiography of Big Bill Haywood,'' pg. 287.</ref>
 
=== 인종을 초월한 노동자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