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콩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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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삶 ==
오귀스트 콩트는 [[1798년]]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막바지에 태어나 프랑스의 정치적인 급변이 계속되던 혼란의 시기를시기에 살았다. 프랑스는 그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안정적인 정치체계를 이루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혼란은 더해져 가고 있었다. 콩트는 이러한 시기를 살았으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안정을 이루고 개선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에꼴 폴리테크니크(당시의 엘리트 기술학교)를 그만둔 후 당시의 저명한 연구자인 [[앙리 드 생시몽]]과 교류하였으며, 그와 함께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론보다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실질적인 행동에 더 비중을 두는 생시몽과 갈등하였으며 결국 결별하였다.
 
콩트는 이후 자신의 저작인 《실증철학강의》를 집필하는 데 주력하고 ‘[[사회학]]’의 원리들을 창안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그다지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의도한 모든 과학의 통합은 지나치게 큰 야망으로 생각되었고 따라서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학계에서 고립된 콩트는 자신의 후기저작인 《실증정치체계》에서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색채의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인류교’를 만들고 스스로 사제가 되었다. 즉, 종교의 대체물로서 [[실증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이전과 매우 대비되는데, 왜냐하면 그가 생시몽 유사 종교적 속성을 비난하였으며 그러한 이유로 생시몽과 결별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 내에서도 모순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였으나 그가 사회학을 창시하고 후대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