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 (조선 영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55번째 줄:
영조 후기 영조의 양대 척신 가문인 정순왕후의 친정 오라비 김귀주 및 [[경주 김씨]](慶州金氏)측과 혜경궁 홍씨 친정 [[풍산 홍씨]](豊山 洪氏)측은 영조 말년에 계속적으로 대립했다.
 
남편 [[조선 영조|영조]]가 승하하고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王大妃)로 승격되었으며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경복궁 자경전(慈慶殿)으로 처소를 옮겼다. 홍인한 , 정후겸 등 영조 척신 일파의 숙청을 단행했다.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는 영조 시기에 후일 정조가 중용하는 청명당과 함께 행동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정조가 즉위하자 한성판윤을 제수받고 홍인한 , 정후겸 탄핵에 동참했다.
72번째 줄:
 
=== 순조 시대 ===
[[1800년]], 손자 [[조선 정조|정조]]가 승하하고 증손자인 [[조선 순조|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승격되었으며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에서 [[경복궁]] 자경전(慈慶殿)으로 처소를 옮겼다. 정순왕후는 왕실의 제일 큰 윗전 즉 [[대왕대비]](大王大妃)로서 4년 동안 [[수렴청정]]을 행하였다.
 
이 시기에 정순왕후가 여군(女君) , 여주(女主)를 자칭하는 것을 두고 본인이 여자국왕 , 여자임금 임을 자처한 것이라는 해석이 한동안 주류를 이뤘으나 이는 완전한 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