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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왜는 주로 [[조선]] [[정부]]에 반감을 품었거나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강요로 말미암아 굴복하여 [[부역]]한 자들로 이루어졌다. 이들 순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조선 조정에 불만이 있던 자들이 정유재란 때 일본과 결탁하여 난을 일으킨 경우, 두 번째는 왜군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조선의 상황 등 각종 정보 제공을 하였던 것, 마지막으로 왜군으로 참전하여 전투를 나선 경우로 나뉜다.
 
대표적인 인물은 [[1587년]] [[정해왜변]] 때 일본군의 길잡이로 활동한 [[사화동 (순왜)|사화동]]<ref> <한국사 악인열전> </ref>과 [[임진왜란]] 때, 피난와 있던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포박하여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 주었던 [[국경인]]과 [[김수량]]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외에 [[사천해전]]에서 왜군 선단에서 조총을 쏘는 소총수 중에 조선인도 있었다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조선 국민들의 민심이 크게 이반되어 일본군이 쳐들어 왔을 때, 적극적으로 일본군에 동조하는 현상이 있었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이상하지만 당시 [[조선]] 조정의 통치 방식의 대한 불만이 사회 저변에 팽배한 결과이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업고 일본 군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왕도 [[한양]]까지 손쉽게 진출하였다. 그로 인하여 [[임해군]]과 [[순화군]]은 병력을 모으기 위하여 함경도로 갔으나 민가를 약탈하고 주민을 살해하는 등의 행위로 반감을 샀다. 이러한 행태에 불만을 품은 [[국경인]], [[김수량]], [[이언우]], [[함인수]], [[정석수]], [[전언국]]이 조선 왕자 일행을 억류하고 [[회령]]을 직접 통치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또한, 포박한 임해군과 순화군을 비롯하여 살해한 관리들의 시신을 일본군에 넘겨 주었다. 그러나 이들 [[쿠데타]] 세력은 이후 회령의 봉토를 나누어 가지고 임해군 일행과 별 다를 바 없는 전횡을 시작하였다. 민중의 향배가 바뀌자 조선 군대가 계속하여 승전하게 되고 회령의 순왜는 모두 사로 잡혀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