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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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왕조를 연 태조 이단은 즉위 한 달 만에 수도를 옮길 결심을 했다.<ref name="chung160">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160페이지</ref> 처음에는 나라 이름도 고치지 않고 수도도 그대로 [[개성특급시|개경]]으로 할 생각이었으나 무슨 까닭에서인지 천도를 결심, 후보지를 고르기 시작했다.<ref name="chung160"/> 일설에 의하면, 그가 고려의 왕족 왕씨를 가혹하게 몰살시킨 후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조는 고려 왕족들에게 살기 좋은 섬으로 보내 살게 해준다는 구실로 왕씨들을 배에 태운 다음 바다 한가운데서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모두 물귀신으로 만들었는데, 그날 밤 [[고려 태조]] [[왕건]]이 꿈에 나타나 보복을 선언했다는 것이다.<ref name="chung160"/>
 
제일 먼저 후보지로 지목된 곳은 계룡산이었다. 이성계는이단(이성계)은 곧바로 궁궐터를 닦기 시작했다.<ref name="chung161">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161페이지</ref> 그러나, [[하륜]]이 계룡산 천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ref name="ReferenceA">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휴머니스트, 2005) 2권 2장</ref> '너무 협소하여 백성들이 들어가 살기 어렵고, 토지가 비옥하지 못하여 교통이 불편하고 [[금강]]이 멀어 백성들이 고생한다'는 이유였다.<ref name="chung161"/> [[정도전]] 등도 계룡산으로의 천도를 반대하여 태조는 [[하륜]], [[정도전]], [[권중하]] 등에게 명하여 새로운 길지를 선정하로록 했다.
 
==== 한양 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