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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정치의 혼란과 쇠퇴 ===
[[파일:Battle_of_Lepanto_1571.jpg|right|200 px|thumb|[[레판토 해전 (1571년)]]]]
쉴레이만이 죽은 지 5년 후인 [[1571년]], [[레판토 해전 (1571년)|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함대는 기독교 세계의 연합 함대에게 패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스만 제국이 유럽 제국보다 열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며, 그 국력은 여전히 강대하였으며 또 지중해의 해상권이 순식간에 오스만 제국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제국 함대는 패전한 지 반년 만에 동규모의 함대를 재건하여, [[1573년]]에 [[키프로스 섬]]을, 다음해에는 [[튀니스]]를 획득하였다. 1683년까지 슬로베니아와 아드리아 해 연안을 제외한 모든 [[발칸 반도]] 지역을 지배하였다. <ref name="조르주"/>{{rp|201}}
 
그러나 18세기부터 힘이 약해졌다. 1699년 헝가리를 잃고, 다음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절대군주로부터의 민주혁명과 각 민족별 독립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 선상에서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땅을 되찾는 한편, [[아랍인]]을 비롯한 피지배 민족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1830년에는 [[그리스]]가 왕국으로 독립하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침략을 받는다.
오스만 제국은 [[아바스 왕조]]와 [[셀주크 왕조]]의 전통을 이었으나, [[몽골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도 받아 이슬람적이면서도 동시에 투르크적인 국가를 건설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거느림에 따라 여러 민족들과 여러 종교들, 종파가 서로 공존하여 비이슬람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너그러웠으며, 통치에 있어서도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총독이나 그 지방 세력자의 자치에 맡겼다.
 
오스만 제국이 비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너그러웠다는 사례를 하나들자면, 쉴레이만 대제 때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이스탄불]]에서 무슬림에 의한 반유대교도 폭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 상비군을 파견하여 진압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교도와의 상호공존을 위해 같은 무슬림을 진압한 것이다. 이는 중세 후반부터 근세 초기에 서구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민중의 반유대 폭동을 진압하지 못한 것과 극히 대조를 이룬다.
 
오스만 제국은 '''다언어 사회'''였던 것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공식적으로는 투르크 언어가 사용되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각각의 지방 집단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주로 사용했다. 공문서에는 투르크어가 사용되었으나 투르크족이 아닌 민중에게 전달될 때에는 그들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는 일들이 흔했다. 때로는 칙령이나 칙어도 그리스 언어 등으로 쓰이기도 했었다.
== 같이 보기 ==
{{포털|역사}}
{{commons위키공용|Category:Ottoman Empire|오스만 제국}}
* [[터키]]
* [[쉴레이만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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