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로코솝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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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정보
|이름 =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로코솝스키
|현지어표기={{lang|ru|Константин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Рокоссовский}}
|생애 = [[1896년]] [[12월 21일]] ~ [[1968년]] [[8월 3일]]
|그림 = RokossovskyK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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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Signature of Konstanty Rokossowski.jpg
}}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로코솝스키'''({{llang|ru|Константин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Рокоссовский}}, {{llang|pl|Konstanty Rokossowski}}, [[1896년]] [[12월 21일]] ~ [[1968년]] [[8월 3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군인이었다. 전후에는 [[폴란드]] 국방장관과 소련 국방차관을 지냈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코솝스키는 [[제1차 세계 대전]]때 [[러시아 제국|러시아군]] [[기병대]]에서 복무하던 중 혁명이 일어나자 [[붉은군대]]에 가담했다. 기병대에서 활약했던 그는 붉은군대에서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기갑부대를 중시하는 혁신적인 생각때문에 기병을 중시하는 보수파 고위 장교들(대표적으로 [[부됸니]])과 충돌이 잦았다. 이것이 이유가 되어 [[1937년]] [[대숙청]] 기간 동안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폴란드인이었기 때문에 "폴란드 첩보조직과 내통" 이라는 이유가 공식적인 죄목이었다. 이때 고문으로 갈비뼈가 세대, 이빨이 아홉 개가 부러졌고, 특히 발을 심하게 다쳐 평생 뒤뚱거리며 걸었다고 한다. 1940년 점증하는 독일의 위협과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동료들의 탄원으로 이유없이 석방되었고 스탈린과의 짧은 면담 이후 [[키에프]] 군관구의 군단장으로 복직했다.
 
이후 로코솝스키는 [[게오르기 주코프]]와 함께 붉은군대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이 되었고, 소련군의 승리한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 [[바그라티온 작전]]등의 거의 모든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1944년에는 원수로 승진하였다. 1945년에는 나치독일의 숨통을 끊는 [[베를린 공방전]]에도 참전했다.
 
전후에는 폴란드 주둔 소련군 사령관을 맡았고 스탈린의 명령으로 폴란드에 귀화하여 폴란드 국방장관을 지냈다. 로코솝스키를 비롯한 많은 폴란드계 소련군인들은 소련의 위성국이 된 폴란드군에 남아 복무했다. 그러나 그는 폴란드어에 매우 서툴렀고, 연설조차 러시아어로 하였다. 그래서 폴란드인들은 35년동안이나 러시아에 살았던 그를 러시아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는 "러시아에서는 나를 폴란드인이라고 했는데, 폴란드에서는 나를 러시아인이라고 한다"고 씁쓸히 말하기도 했다. 국방장관으로서 그는 폴란드 군의 재건에 기여하였지만, 소련에 반대하는 폴란드인들을 잔인하게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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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으로 <<군인의 의무>>를 남겼다.
 
{{commons위키공용|Георг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Жуков}}
{{소비에트 연방의 원수}}
{{Authority 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