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2세 알키비아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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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알브레히트 2세 알키비아데스'''(Albrecht II Alcibiades, 1522년 3월 28일 - 1557년 1월 8일)는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 독일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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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에 아버지 [[카슈미르 콜룸바흐]]가 [[이질]]로 사망하고 어머니인 [[바이에른의 수산나]]는 [[팔라틴]] [[선제후]] [[오토 하인리히]]와 재혼하여 떠났다. 아버지 [[카슈미르 콜룸바흐]]의 유언에 따라 후견인으로 삼촌인 [[게오르크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및 당시 [[보헤미아]]의 왕인 [[페르디난트 1세]]가 지명되었다. 알브레히트는 삼촌 [[게오르크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에 의해 양육되고, 교육은 또다른 삼촌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이 맡았다.
 
[[1541년]]까지 삼촌 [[게오르크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게오르크]]가 [[콜룸바흐]]의 후작직을 대신하였고 1541년에 가서 후작직을 승계하였다. [[1542년]] 성년이 된 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군대로 들어가 황제 [[카를 5세]]의 군인으로 생활한다. [[1543년]]에 삼촌 게오르크가 사망하자 그는 다시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 사촌동생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후견인이 되었다.
 
그는 황제 [[카를 5세]]의 군대 지휘관으로 있었으나 [[1551년]] 작센 선제후 모리츠와 함께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에게 가담하여, [[독일]] 서부의 영토 일부인 메츠, 툴, 베르됨을 [[앙리 2세]]에게 할양하였다. 1551년 10월 프랑스의 앙리 2세와 콜룸바흐 후작 알브레히트 2세 알키비아데스와 작센 선제후 모리츠 사이에 비밀협정이 체결되고 영토 서부는 모리츠에 의해 1552년 1월 프랑스로 할양되었다. 프랑스 앙리 2세와의 전쟁에서 거듭 패배한 황제 [[카를 5세]]는 동생 [[페르디난트 1세]]가 체결한 파사우 조약을 인정하고, 동생에게 [[독일]]의 통치권을 넘기고 물러났다. 후에 [[카를 5세]]는 알브레히트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가 점령한 지역을 영토로 승인한다. 그러자 알브레히트는 다시 황제 [[카를 5세]]에게 가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