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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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은 성경에서도 명확하게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언제 있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지침이 되는 날이었으며, 동시에 이 날은 저녁식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들이 모임으로써(이른바 '[[최후의 만찬]]') [[성체성사]](혹은 [[성만찬]])를 제정한 날이었다. 성체의 의미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해 흘릴 몸과 피는 유월절 어린 양과 결합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유월절의 흠 없는 양이라는 것이 신학적으로 명확해진 것이었다. 이 날은 교회 전례력에서 '성 대 목요일'(성체성사 제정 기념일/주님 만찬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참된 유월절 어린 양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유월절을 전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구원의 예표인 유월절 기간은 점차 진정한 구원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바뀌어 갔다. 2세기부터 3세기까지 동방교회 특히 성 사도 [[요한]]과 [[필립보]]의 전통을 따르는 폴리카르포, 사르디스의 멜리토 등의 교부들은 유대적 전통과 신학적 예표 의미가 강한 유월절의 날짜인 니산월 14일을 그대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서방교회는 부활이 일어난, 니산월 14일 후 바로 돌아오는 일요일에 지내는 것을 주장했다. [[부활절 논쟁이라논쟁]]이라 불리는 이 논쟁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마무리되었다.([[춘분]] 후 첫 보름달이 지난 주일)
 
현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공식적인 전례로 유월절을 기념하지는 않으나 본당이나 가정에서 기념 차원에서 재현할 수 있다. 이 예식 거행에서 최후의 만찬이 다시 이뤄지지는 않지만 구원 역사의 공통뿌리는 인식하는 차원에서 유월절의 참된 의미가 담긴 '하가다'에 규정된 예식을 정확하게 재현하며, 이는 또한 유월절 축제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그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신앙적 존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