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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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설 ==
[[세종대왕]]이 죽으면서 자신의 [[문종 (조선)|장남 향]](문종)도 오래 못살 것이라 판단하고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어린 손자 홍위를 부탁할 것을 유언하였다 한다. [[조선 단종|단종]]이 강제로 폐위되자 이들은 세조 암살을 통해 단종의 복위를 꾀하였으나, 밀고자에 의해 적발되어 혹독한 [[고문]]끝에 일가족과 함께 [[새남터]]에서 [[참수|참수형]]으로 처형당했다. 당시 시체는 처형장인 새남터에 그대로 버려졌으나, [[생육신]] 중 하나인 매월당 [[김시습]]에 의해 몰래 매장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노량진]]에 사육신을 기념하는 묘지가 있다.
 
사육신은 성삼문, 하위지, 유응부, 박팽년, 이개, 유성원 여섯 명이고, 기타 윤영손(尹鈴孫), 김문기와 성승, [[김질 (1422년)|김질]], 권자신(權自愼) 등이 가담했다. 그리고 신숙주는 참여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김질이 끝에 장인 [[정창손]]에게 이 사실을 누설했다가, [[정창손]] 등의 설득에 넘어가 계획을 폭로하게 되면서 사육신과 유응부, 성승 등은 모두 참살당했다. 한편 사육신 집안의 여성들은 난신에 관계된 부녀자라 하여 노비가 되거나 관노, 기생 등으로 끌려갔다가 뒤에 일부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