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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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09-8-6}}
'''진이왕'''(辰爾王 : ? ~ ?)은 [[7세기]] 초의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 무왕|무왕]]을 [[백제 법왕|법왕]]의 [[친생자]]로 보지 않는 견해에서 [[백제 무왕|무왕]]의 생부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백제 법왕|법왕]]의 [[서자]]라고는 하나,<ref name="日"> [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keifu.htm 豊 田 家 系 譜] </ref> 확실하지 않다.
 
[[중국]]의 사서들과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며 [[중국]]의 사서인 《[[후주서]]》(後周書), 《풍속통 (風俗通)》,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에는 '''부여관'''(夫餘寬)이라는 사람이 [[백제 무왕|무왕]]의 아버지라 한다. [[조선]]에는에서는 19세기 학자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통해 알려졌다.
 
== 생애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조선]] [[조선 정종|정종]] 때 [[일본]]의 번주 [[오우치 요시히로]]가 보낸 족보를 통해 알려졌다. [[오우치 요시히로]]는 자신이 성명왕([[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확인, 입증해 달라는 공문을 정종 1년(1398년) 7월에 [[조선]]으로 정식으로 보냈는데, 거기에 진이왕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그뒤 그의 존재는 잊혀졌다가 [[19세기]] [[이규경]]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다시 법왕 선이나 위덕왕 창이 아닌 부여관이 부여장([[백제 무왕]])의 아버지라고 쓴 구절이 나오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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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 ==
* 부왕 : [[백제 법왕|법왕]]? 또는 [[백제 위덕왕|위덕왕]]
* 적모 : 왕후 해씨(王后 解氏)
* 생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