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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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불교)|신]](信)의 [[자상|본질]][自相, 性]은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정화시켜 청정(淸淨: 맑고 깨끗함)하게 하는 것임{{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29b28 T31n1585_p0029b28 - T31n1585_p0029c01]. 신(信)의 본질|ps=<br>"忍謂勝解。此即信因。樂欲謂欲即是信果。礭陳此信自相是何。豈不適言。心淨為性。"}}{{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84 284 / 583]. 신(信)의 본질|ps=<br>"[문] 인정하는 것은 승해(勝解)이니, 이것은 믿음의 원인이다. 좋아하여 원한다는 것은 욕구[欲]이니, 곧 믿음의 결과이다. 이 신심소를 확실히 말하면 자상이 어떠한가?<sup style="color: blue">5)</sup>
[답] 어찌 적절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심왕을 청정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br><sup style="color: blue">5)</sup> 외인(外人)의 질문이다. 신(信)심소의 인과는 분명히 하고, 아직 그것의 자상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 자상은 어떠한가라고 묻는다."}}
* [[불교 용어 목록/수#승해|깊이 인정하고]][深忍, 勝解] [[삼수 (불교)|깊이 좋아하고]][深樂, 樂受]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깊이 원함]][深欲, 欲]
* [[불교 용어 목록/시#실|실]](實){{.cw}}[[불교 용어 목록/ㄷ#덕|덕]](德){{.cw}}[[불교 용어 목록/ㄴ#능|능]](能)을 깊이 [[불교 용어 목록/수#승해|인정하고]] [[삼수 (불교)|좋아하고]]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원함]]
** [[불교 용어 목록/시#실|실]](實)은 [[인과법 (불교)|인과법]]과 [[4성제]]를 비롯한 [[일체의 법]]의 참다운 [[이와 사|사리]](事理: 현상적 측면과 진리적 측면)를 말함
** [[불교 용어 목록/ㄷ#덕|덕]](德)은 [[삼보 (불교)|3보]]의 [[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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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 (불교)|흔]](欣): 기뻐함{{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6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30c10 T31n1585_p0030c10 - T31n1585_p0030c12]. 무진을 본질로 하는 경우|ps=<br>"欣謂欲俱無瞋一分。於所欣境不憎恚故。不忿恨惱嫉等亦然。隨應正翻瞋一分故。"}}{{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6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97 297 / 583]. 무진을 본질로 하는 경우|ps=<br>"기뻐함[欣]이라는 것은 욕(欲)심소와 함께하는 무진심소의 일부이다. 기뻐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증오나 성냄이 없기 때문이다. 분노하지 않음, 원한을 품지 않음, 고뇌하지 않음, 질투하지 않음 등도 역시 그러하다.<sup style="color: blue">79)</sup> 상응한 바에 따라서 바로 진(瞋)심소의 일부에 정반대이기 때문이다.<br><sup style="color: blue">79)</sup> 분노하지 않음[不忿], 원한을 품지 않음[不恨], 고뇌하지 않음[不惱], 질투하지 않음[不嫉] 등은 분노[忿]{{.cw}}원한[恨]{{.cw}}고뇌[惱]{{.cw}}질투[嫉] 등의 심소를 뒤집어 정반대로 건립된 것인데, 어느 것이나 모두 무진(無瞋)심소의 일부이다."}}
** [[무기성]](無記性)의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과 함께하는 [[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을 본질로 함
** 기뻐하는 것은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에 속하지만, 기뻐하게 된 대상[所欣境]에 대해서는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에 속한 것이기도 함
** 즉, [[흔 (불교)|흔]](欣)은 [[무기성]](無記性)의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이 [[선근]](善根)과 [[자성선]](自性善) 중의 하나인 [[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과 [[상응]]하여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이 된 것으로, 따라서 [[흔 (불교)|흔]](欣)은 [[상응선]](相應善)임
** 요컨데, [[흔 (불교)|흔]](欣)하게 된 대상[所欣境]에 대해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흔 (불교)|흔]](欣)은 [[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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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경심소]](別境心所)에 속한 [[마음작용]]들
** [[촉 (마음작용)|촉]](觸): [[불교 용어 목록/구#근|근]](根){{.cw}}[[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경]](境){{.cw}}[[심의식|식]](識)의 화합
**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 [[원함]], [[욕구]], [[희망]], 선욕(善欲)과 악욕(惡欲)이 있음
 
====부정심소의 면·회·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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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가지 선심소의 [[마음작용]] 중 [[참 (불교)|참]](慚){{.cw}}[[불교 용어 목록/경#괴|괴]](愧){{.cw}}[[무탐]](無貪){{.cw}}[[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cw}}[[무치]](無癡)는 본질적으로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인 [[자성선]](自性善)에 해당하고, 나머지 6가지 [[마음작용]]들, 즉 [[믿음 (불교)|신]](信){{.cw}}[[정진 (마음작용)|정진]](精進){{.cw}}[[불교 용어 목록/경#경안|경안]](輕安){{.cw}}[[불방일|불방일]](不放逸){{.cw}}[[행사 (마음작용)|행사]](行捨){{.cw}}[[불교 용어 목록/불#불해|불해]](不害)는 본질적으로는 [[삼성 (불교)#선·불선·무기|무기]](無記)이지만 5가지 [[자성선]](自性善)과 상응함으로써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이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pp=[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624 624 / 1397]}}{{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pp=[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58 58 / 1397]}}
 
한편, [[작의 (마음작용)|작의]](作意){{.cw}}[[촉 (마음작용)|촉]](觸){{.cw}}[[수 (불교)|수]](受){{.cw}}[[불교 용어 목록/삽#상|상]](想){{.cw}}[[불교 용어 목록/ㅅ#사|사]](思)의 [[변행심소]](遍行心所)와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cw}}[[불교 용어 목록/수#승해|승해]](勝解){{.cw}}[[불교 용어 목록/ㅇ#염|염]](念){{.cw}}[[불교 용어 목록/삼#삼마지|삼마지]](三摩地, 定){{.cw}}[[혜 (마음작용)|혜]](慧)의 [[별경심소]](別境心所)와 [[수면 (마음작용)|수면]](睡眠, 眠){{.cw}}[[악작|악작]](惡作, 悔){{.cw}}[[심 (마음작용)|심]](尋){{.cw}}[[불교 용어 목록/ㅅ#사|사]](伺)의 [[부정심소]](不定心所)는 모두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cw}}[[악 (3성)|악]](惡){{.cw}}[[삼성 (불교)#선·불선·무기|무기]](無記)의 [[3성 (불교)|3성]](三性)에 통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삼성 (불교)#선·불선·무기|무기]](無記)의 성질을 가진다. 이들은 모두 [[상응선]](相應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심소 그룹에 속하지 않고 각자의 그룹에 속한 것은 [[4일체]](四一切)의 기준에서 선심소 그룹의 [[마음작용]]들과는 그 성격이 구별되기 때문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5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26c27 T31n1585_p0026c27 - T31n1585_p0027a08]. 4일체(四一切)|ps=<br>"雖諸心所名義無異而有六位種類差別。謂遍行有五。別境亦五。善有十一。煩惱有六。隨煩惱有二十。不定有四。如是六位合五十一。一切心中定可得故。緣別別境而得生故。唯善心中可得生故。性是根本煩惱攝故。唯是煩惱等流性故。於善染等皆不定故。然瑜伽論合六為五。煩惱隨煩惱俱是染故。復以四一切辯五差別。謂一切性及地時俱。五中遍行具四一切。別境唯有初二一切。善唯有一。謂一切地。染四皆無。不定唯一。謂一切性。由此五位種類差別。"}}{{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5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59 259 / 583]. 4일체(四一切)|ps=<br>"모든 심소는 명칭이나 개념[義]에 다른 것이 없지만, 여섯 가지 지위의 종류로 차별이 있다. 변행심소에 다섯 가지가 있고, 별경심소에 역시 다섯 가지가 있으며, 선심소에 열한 가지가 있고, 번뇌심소에 여섯 가지가 있으며, 수번뇌심소에 스무 가지가 있고, 부정심소에 네 가지가 있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지위를 합하면 쉰한 가지가 된다.
(변행심소는) 모든 심왕 중에 반드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고,(별경심소는) 갖가지 대상을 반연하여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며, (선심소는) 오직 선(善)으로서 심왕 중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번뇌심소는) 본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이고, (수번뇌심소는) 오직 번뇌의 등류성(等流性)이기 때문이며, (부정심소는) 선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사지론』에서 여섯 종류를 합해서 다섯 종류로 한 것은,<sup style="color: blue">169)</sup> 번뇌심소와 수번뇌심소가 모두 잡염이기 때문이다. 다시 네 가지 일체로써 다섯 종류의 차이를 판별하니, 곧 일체의 성품[性]<sup style="color: blue">170)</sup>{{.cw}}머무는 곳[地]<sup style="color: blue">171)</sup>{{.cw}}시간[時]<sup style="color: blue">172)</sup>{{.cw}}함께함[俱]<sup style="color: blue">173)</sup>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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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근]](善根), 즉 '선(善)의 뿌리'라는 말은, [[자성선]]이 아닌 어떤 [[마음작용]]이 [[선]](善)이 되기 위해서는 5가지의 [[자성선]]들 중에서도 특히 이들 3가지 [[자성선]]과 상응함으로써 비로소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 좋은 과보를 낳는 것,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과장되이 말하면, [[자성선]]이 아닌 어떤 [[마음작용]]이 [[선]](善)이 되기 위해서는 [[무탐]](無貪){{.cw}}[[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cw}}[[무치]](無癡) 중 어느 하나 혹은 다수와 "반드시" 상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위에서 나열된 "기타 선심소들" 중에서 다수가 [[무탐]](無貪){{.cw}}[[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cw}}[[무치]](無癡) 중 어느 하나 혹은 둘을 본질로 하고 있다.
 
[[자성선]]이 아닌 어떤 [[마음작용]]이 [[선]](善)이 되는 경우의 예로서, 원래의 성질이 [[삼성 (불교)#선·불선·무기|무기]](無記)인 [[별경심소]]의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 원함, 욕구, 희망)을 들 수 있다.
 
[[불교 (마음작용)용어 목록/온#욕|욕]](欲: 원함, 욕구, 희망)은 [[무탐]](無貪: 타인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하려는 욕망이 없는 것){{.cw}}[[불교 용어 목록/무#무진|무진]](無瞋: 성냄이 없는 것, 미워함과 원망이 없는 것, 탓함이 없는 것, 자비로움){{.cw}}[[무치]](無癡: 4성제를 아는 것, 연기법을 아는 것, 인과와 공의 도리를 아는 것)의 하나 혹은 다수와 [[상응]]하면 선욕(善欲)이 된다. 그리고, 선욕(善欲)은 [[정진 (마음작용)|정진]](精進, 勤, 正勤, 힘써 노력함, 바른 노력, 8정도의 정정진)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T.1585|loc=제5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585_p0028a20 T31n1585_p0028a20 - T31n1585_p0028a21]. 욕(欲)심소|ps=<br>"云何為欲。於所樂境希望為性。勤依為業。"}}{{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5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271 271 / 583]. 욕(欲)심소|ps=<br>"무엇을 ‘욕심소’<sup style="color: blue">231)</sup>라고 하는가? 좋아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희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근(勤)심소의 의지처[依]인 것을 업으로 삼는다.<br><sup style="color: blue">231)</sup> 욕(欲, chanda)심소는 ‘욕구’, 즉 좋아하게 된 대상을 희망하는 심리작용이다. 특히 선욕(善欲)은 정진[勤] 작용을 일으키는 소의(所依)가 된다. "}}{{sfn|황욱|1999|p=51. 욕(欲)심소|ps=<br>"‘欲’은 所樂境을 희망함으로써 體를 삼고 勤의 所依가 됨으로써 業을 삼는다. 즉, 관찰하고자 희망하는 경계에 대하여 희망하는 것을 性用으로 하고, 이 희망은 善이나 惡이나 無記性은 말할 것도 없고 三性을 모두 희망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 善欲은 正勤 즉 精進의 작용을 일으킬 所依가 되기 때문에 業用으로 삼는다.<sup style="color: blue">163)</sup>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즐거움을 야기하기 위하여 짓는 희망을 體로 하고, 正勤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sup style="color: blue">164)</sup>
<br><sup style="color: blue">163)</sup> 欲의 性用은 所樂境을 희망하는 작용을 의미하며, 그 業用은 勤[精進]이 희망에서 生起하는 작용을 뜻한다. 欲은 意慾이나 희망을 말하는 것으로 業力이나 境界勢力에 따라서 별다른 희망없이 任運히 境을 緣할 때에는 이 欲心所가 일어나지 않고 作意로서 관찰하고자 할 때 희망이 솟구쳐 欲心所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br><sup style="color: blue">164)</sup>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05_p0664a27 p.664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