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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sup style="color: blue">39)</sup> 즉 이 같은 사견은 실유의 4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손의 견해이지만, 변집견 중의 상견과 그 밖의 3견은 무상하고 저열하고 실재가 아니고 청정도가 아닌 것을 상주하고 뛰어나고 실재하고 청정도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긍정하려는 증익의 주장이다."}}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사견]]의 [[본질적 성질]][性]은 [[원인 (불교)인연|원인]][因]{{.cw}}[[불교 용어 목록/정#증득|결과]][果] 또는 [[작용 (불교)|작용]](作用)을 부정하거나, 혹은 [[선한 일]][善事]을 허물거나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이다. 그리고 [[사견]]의 [[본질적 작용]][業]은 [[선근]]을 끊고 [[불선근]]을 견고히 하고 [[삼성 (불교)#선·불선·무기|불선]]을 낳고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을 낳지 않는 것이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612|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2_p0849a27 T31n1612_p0849a27 - T31n1612_p0849a28]. 사견(邪見)|ps=<br />"云何邪見。謂或謗因或復謗果。或謗作用或壞善事。染污慧為性。"}}{{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loc=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71&startNum=5 5 / 12]. 사견(邪見)|ps=<br />"어떤 것을 사견이라 하는가. 혹 인(因)을 비방하기도 하고, 혹 과(果)를 비방하기도 하고, 혹 작용(作用)을 비방하기도 하고, 혹 선한 일을 비방하기도 하는 것이니, 염오의 지혜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sfn|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613|loc=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31n1613_p0853a06 T31n1613_p0853a06 - T31n1613_p0853a18]. 사견(邪見)|ps=<br />"云何邪見。謂謗因果。或謗作用。或壞善事。染慧為性。謗因者。因謂業煩惱性。合有五支。煩惱有三種。謂無明愛取。業有二種謂行及有。有者。謂依阿賴耶識諸業種子此亦名業。如世尊說。阿難。若業能與未來果彼亦名有。如是等。此謗名為謗因。謗果者。果有七支。謂識名色六處觸受生老死。此謗為謗果。或復謗無善行惡行。名為謗因。謗無善行惡行果報。名為謗果。謗無此世他世。無父無母。無化生眾生。此謗為謗作用。謂從此世往他世作用。種子任持作用。結生相續作用等。謗無世間阿羅漢等。為壞善事。斷善根為業。不善根堅固所依為業。又生不善。不生善為業。"}}{{sfn|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loc=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72&startNum=11 11-12 / 24]. 사견(邪見)|ps=<br />"무엇을 사견이라고 하는가? 인과를 비방하고, 혹은 작용(作用)을 비방하고, 흑은 선한 일을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인(因)을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인온 업의 번뇌성을 말한다. 합해서 다섯 가지가 있다.
<br />번뇌에는 무명{{.cw}}애(愛){{.cw}}취(取)의 세 가지가 있다. 업에는 행(行) 및 유(有)의 두 가지가 있다. 유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의지하는 모든 업의 종자를 말한다. 이는 또한 업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br />“아난아, 만약 업이 능히 미래의 과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또한 유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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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금취의 5부 분별===
 
[[계금취]]는 크게 세 유형이 있는데 첫 번째는 [[대자재천]]{{.cw}}[[생주신]] 혹은 [[프라크리티]](prakriti, 자성)나 [[시간 (불교)|시간]](kala)과 같은 그 밖의 존재를 [[세간]]의 [[원인 (불교)인연|원인]]으로 여겨 그것이 [[세간]]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원인 (불교)인연|원인]]인 아닌 것을 [[원인 (불교)인연|원인]]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불교 용어로는 '''비인계인'''(非因計因)의 [[계금취견]]이라고 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100a26 T29n1558_p0100a26 - T29n1558_p0100b04]. 계금취(戒禁取)의 5부 분별|ps=<br>"若於非因起是因見。此見何故非見集斷。頌曰。
<br>  於大自在等  非因妄執因
<br>  從常我倒生  故唯見苦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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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sup style="color: blue">41)</sup> 자재천 등 세간의 참된 원인이 아닌 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계탁하는 계금취견은, 자재신 등을 상주하는 것이고 진정한 자아라고 하는 주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온취집의 고과(苦果) 즉 현실에 미혹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고제(苦諦)를 현관하면 즉각 제거되는 견고소단의 번뇌이다.(『대비바사론』 권제119, 한글대장경125, p. 544)"}}
 
[[비인계인]]의 [[계금취견]]은 [[원인 (불교)인연|원인]]인 아닌 것을 [[원인 (불교)인연|원인]]이라고 여기는 것이므로 [[견집소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이러한 견해는 이들 존재의 본질이 상주하는 것[常]이며, 단일한 것[一]이며, [[자아 (불교)|자아]]이며, [[작자 (불교)|작자]]라고 헤아린 후에 비로소 이들 존재를 [[세간]]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는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고제]](苦諦)를 관찰할 때 [[자재천]] 등에 대한 [[상집]](常執)과 [[아집]](我執)은 영원히 끊어져 남김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들 존재들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所生因]이라는 주장도 역시 끊어지게 된다. 따라서 [[비인계인]](非因計因)의 [[계금취]]는 [[견고소단]]이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100a26 T29n1558_p0100a26 - T29n1558_p0100b04]. 계금취(戒禁取)의 5부 분별}}{{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19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870 870 / 1397]. 계금취(戒禁取)의 5부 분별}} 참고로, 불교에서는 [[유정 (불교)|유정]]이 짓는 [[업]]이 [[세간]]과 [[세간]]의 [[차별 (불교)|차별]]의 참된 원인이라고 본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3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67b07 T29n1558_p0067b07 - T29n1558_p0067b12]. 세간의 차별과 업|ps=<br>"如前所說有情世間及器世間各多差別。如是差別由誰而生。頌曰。
<br>  世別由業生  思及思所作
<br>  思即是意業  所作謂身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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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sup style="color: blue">1)</sup> 외도들은 만유가 생주(生主, Prajapati)나 자재천(自在天, Mahesvara)과 같은 초월적 신이나 자성(自性, prakṛti)이나 자아(puruṣa)와 같은 근원적 원리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하든지, 혹은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유부에서는 만유차별의 참된 원인을 업으로 파악하고, 이하 이에 대해 분별하고 있다. 여기서 욕각(欲覺)이란 생주신이 '내가 다(多)가 되리라' '내가 번식하리라'고 의욕하는 것을 말한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세계는 바로 이러한 근원적 실재의 의욕으로부터 생겨나게 되었다."}}
 
두 번째 유형은 물이나 불에 뛰어드는 등의 여러 가지 [[삿된]] [[행 (불교)|행]]이 바로 [[하늘 (불교)|하늘]]에 태어나는 [[원인 (불교)인연|원인]]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다만 [[계금]](戒禁) 등을 수지하는 것에 의해 [[청정도]] 즉 [[바른 길]]을 획득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바른 길이 아닌 것을 바른 길이라고 주장하여 그 길이 [[청정]]과 [[해탈]]과 [[출리]]를 가져오는 [[원인 (불교)인연|원인]]이 된다는 유형의 견해로, 불교 용어로는 '''비도계도'''(非道計道)의 [[계금취견]]이라고 한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19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100b04 T29n1558_p0100b04 - T29n1558_p0100b20]. 비도계도(非道計道)의 계금취견|ps=<br>"若爾有執投水火等種種邪行是生天因。或執但由受持戒禁等便得清淨。不應見苦斷。然本論說有諸外道。起如是見立如是論。若有士夫補特伽羅受持牛戒鹿戒狗戒便得清淨解脫出離。永超眾苦樂至超苦樂處。如是等類非因執因。一切應知。是戒禁取見苦所斷。如彼廣說。此復何因是見苦斷。迷苦諦故有太過失。緣有漏惑皆迷苦故。復有何相別戒禁取。可說彼為見道所斷。諸緣見道所斷法生。彼亦應名迷苦諦故。又緣道諦邪見及疑。若撥若疑無解脫道。如何即執此能得永清淨。若彼撥無真解脫道。妄執別有餘清淨因。是則執餘能得清淨。非邪見等。此緣見道所斷諸法。理亦不成。又若有緣見集滅諦所斷邪見等執為清淨因。此復何因非見彼斷。故所執義應更思擇。"}}{{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19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871 871 / 1397]. 비도계도(非道計道)의 계금취견|ps=<br>"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물이나 불에 뛰어드는 등의 여러 가지 삿된 행이 바로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다만 계금(戒禁) 등을 수지하는 것에 의해 청정도를 획득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즉 非道計道의 계금취견)은 견고소단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sup style="color: blue">42)</sup> 그런데 본론(本論)에서는 이같이 설하고 있다. "온갖 외도가 있어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의를 주장한다. 만약 어떤 사부(士夫)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소처럼 행동하는 계[牛戒], 사슴처럼 행동하는 계[鹿戒], 개처럼 행동하는 계[狗戒]를 수지하면 바로 청정과 해탈과 출리를 획득하여 모든 고락을 영원히 초월하며 고락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즉 이와 같은 따위의 [청정 등의] 참된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 같은 일체의 견해는 바로 계금취로서 견고소단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sup style="color: blue">43)</sup> 나아가 그 밖의 내용 또한 그곳에서 널리 설하고 있는 바와 같다.
<br>그런데 이것이 다시 어떤 이유에서 견고소단이 되는 것인가?
<br>고제(苦諦)에 미혹한 것이기 때문이다.<sup style="color: blue">44)</s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