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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안식]](眼識){{.cw}}[[이식 (6식)|이식]](耳識){{.cw}}[[육식|비식]](鼻識){{.cw}}[[육식|설식]](舌識){{.cw}}[[육식|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고 하며, '''의식'''(意識)을 '''제6식'''(第六識), '''제6 의식'''(第六意識) 또는 '''제6의식'''(第六意識)이라고도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A0%84%EC%98%A4%EC%8B%9D&rowno=1 前五識(전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5384&DTITLE=%A4%AD%C3%D1 五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A0%9C%EC%9C%A1%EC%8B%9D&rowno=1 第六識(제육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대승불교]]의 8식 중 앞의 [[6식]]은, [[대승불교]]에서는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근거로 하여 [[6식]]이 전개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비록 이 차이가 사상적인 면에서 아주 커다란 차이이기는 하지만, [[전5식]]과 [[의식 (불교)육식|의식]](즉, [[제6의식]])의 [[본질적 성질|성질]]과 [[본질적 작용|작용]]에 대해서는 [[부파불교]]의 6식에 대한 견해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 자성분별·계탁분별·수념분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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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견 (불교)|혜 (마음작용)|반야}}
 
'''심려'''(審慮)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살피고 생각하다'로 [[심사숙고]](深思熟考: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하다)를 뜻한다. 《[[구사론]]》에 따르면 [[심려]](審慮)는 '''결탁'''(決度: 확인 판단)과 함께,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건 [[악견]](惡見: 잘못된 견해)이건 모든 [[견 (불교)|견]](見: 견해)의 [[마음작용]]의 [[자성 (불교)|본질]][性] 또는 [[공능]](功能)을 이룬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2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10c16 T29n1558_p0010c16 - T29n1558_p0010c20]. 견(見)|ps=<br />"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審慮為先決度名見。五識俱慧無如是能。以無分別是故非見。准此所餘染無染慧及諸餘法非見應知。"}}{{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2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86 86 / 1397]. 견(見)|ps=<br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의 정견]]은 오로지 [[의식 (불교)육식|의식]]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과 구생(俱生)하는 [[혜 (마음작용)|혜]]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sup style="color: blue">78)</sup> 이를테면 먼저 심려(審慮, 심사숙고의 뜻)하고 결탁하는 것을 일컬어 '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과 구생하는 [[혜 (마음작용)|혜]]는 이와 같은 공능이 없으니, [[무분별]][→ 불확정적인 인식을 말함, [[반야바라밀]]의 [[무분별지]]가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식상응의 혜는] 비견(非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준하여 그 밖의 염오하거나 염오하지 않은 혜와, 아울러 그 밖의 온갖 법도 비견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sup style="color: blue">79)</sup>
<br /><sup style="color: blue">78)</sup> [[자성분별]]만을 본질로 하는 [[전5식]]과 상응하는 [[선혜]](善慧)를 어떻게 [[세간의 정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뜻의 물음. 여기서 '결탁(決度, saṃtīraṇa)'은 확인 판단의 뜻이다.
<br /><sup style="color: blue">79)</sup> [[유신견]] 등의 [[5견]] 이외 [[탐 (마음작용)|탐]] 등과 상응하는 [[혜 (마음작용)|혜]]나 [[의식 (불교)육식|의식]]상응의 [[혜 (마음작용)|혜]]를 제외한 그 밖의 [[혜 (마음작용)|혜]], [[안근|안근]]을 제외한 [[이근 (6근)|이근]](耳根) 등의 모든 [[오근과 육근|근]]과 일체의 [[무부무기]]의 [[혜 (마음작용)|혜]], [[아라한|무학]]의 [[진지 (불교)|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그리고 [[혜 (마음작용)|혜]] 이외 그 밖의 [[법계소섭법]](法界所攝法)은 [[심려]] [[결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 (불교)|견]]'이 아니라는 뜻.(『현종론』 권제4, 한글대장경200, p. 83 참조)"}} [[결탁]](決度, {{llang|sa|[[:en:saṃtīraṇa|<span style="color: black">saṃtīraṇa</span>]]}})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판단하고[決] 헤아린다[度]'인데,<ref>"[http://zonmal.com/hanja_sen.asp?se=%CC%BD%D3%F8 決度]", 《존 한자사전》.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ref> 불교에서는 {{nowrap|'확인 판단'의}} 뜻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과는 차이가 있다.
 
《[[구사론]]》에서는 '''심려결탁'''(審慮決度)이 곧 [[견 (불교)|견]](見: 견해)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보다 정확히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견 (불교)|견]](見: 견해)이라 이름한다[審慮為先決度名見]"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6식]](六識) 중 [[전5식]]은 '심려한 후 결탁하는 능력', 즉 [[견 (불교)|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 능력은 [[6식]] 중에서 오직 [[제6의식]]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여, [[전5식]]과 [[제6의식]]을 분별하고 있다.{{sfn|세친 조, 현장 한역|T.1558|loc=제2권. p.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29n1558_p0010c16 T29n1558_p0010c16 - T29n1558_p0010c20]. 견(見)|ps=<br />"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審慮為先決度名見。五識俱慧無如是能。以無分別是故非見。准此所餘染無染慧及諸餘法非見應知。"}}{{sfn|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loc=제2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86 86 / 1397]. 견(見)|ps=<br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의 정견]]은 오로지 [[의식 (불교)육식|의식]]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과 구생(俱生)하는 [[혜 (마음작용)|혜]]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sup style="color: blue">78)</sup> 이를테면 먼저 심려(審慮, 심사숙고의 뜻)하고 결탁하는 것을 일컬어 '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과 구생하는 [[혜 (마음작용)|혜]]는 이와 같은 공능이 없으니, [[무분별]][→ 불확정적인 인식을 말함, [[반야바라밀]]의 [[무분별지]]가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식상응의 혜는] 비견(非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준하여 그 밖의 염오하거나 염오하지 않은 혜와, 아울러 그 밖의 온갖 법도 비견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sup style="color: blue">79)</sup>
<br /><sup style="color: blue">78)</sup> [[자성분별]]만을 본질로 하는 [[전5식]]과 상응하는 [[선혜]](善慧)를 어떻게 [[세간의 정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뜻의 물음. 여기서 '결탁(決度, saṃtīraṇa)'은 확인 판단의 뜻이다.
<br /><sup style="color: blue">79)</sup> [[유신견]] 등의 [[5견]] 이외 [[탐 (마음작용)|탐]] 등과 상응하는 [[혜 (마음작용)|혜]]나 [[의식 (불교)육식|의식]]상응의 [[혜 (마음작용)|혜]]를 제외한 그 밖의 [[혜 (마음작용)|혜]], [[안근|안근]]을 제외한 [[이근 (6근)|이근]](耳根) 등의 모든 [[오근과 육근|근]]과 일체의 [[무부무기]]의 [[혜 (마음작용)|혜]], [[아라한|무학]]의 [[진지 (불교)|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그리고 [[혜 (마음작용)|혜]] 이외 그 밖의 [[법계소섭법]](法界所攝法)은 [[심려]] [[결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 (불교)|견]]'이 아니라는 뜻.(『현종론』 권제4, 한글대장경200, p. 83 참조)"}} 정확히 말하자면, [[세친]]은 《[[구사론]]》에서 '제6의식만이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데, 이런 표현은 [[마음 (불교)|마음]]과 [[마음작용]]의 이론, 즉 심{{.cw}}심소(心{{.cw}}心所) 이론에 어긋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친]]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인용문|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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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정견]](世間正見)은 오로지 [[의식 (불교)육식|의식]](意識, 즉 제6의식)과 [[상응]](相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五識)과 구생(俱生, 함께 일어남)하는 [[혜 (마음작용)|혜]](慧)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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