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부아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6번째 줄:
== 전투 ==
{{본문|팔레즈 포위전}}
 
[[뤼티히 작전]]의 실패 이후, 독일군은 샹부아를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8월 17일 [[제1캐나다군]]이 팔레즈를 점령했고, 독일군은 폴란드, 미국, 캐나다 기갑군에 의해 샹부아 시에서 포위되고 말았다. [[B 집단군]]의 사령관이었던 [[발터 모델]]은 제7 그리고 제5기갑군에게 [[디브 강]]을 건너 철수를 명령하는 한편, 미군에 맞서 새로운 방어망을 형성하라 지시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재빠른 진격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캐나다군은 디브 강의 독일 국방군 군대를 격파하여 샹부아를 포위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군 또한 독일군 부대가 들어갈 수 있는 포위망을 만들기 위해 독일군 고립에 주력했다.
 
8월 19일, 샹부아의 포위 지대가 완전히 고립되었고, 연합군은 도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대부분의 독일군은 첫 공격에서 죽거나 다쳤지만, 제7군의 [[파울 하우서]]가 이끄는 부대는 반격을 감행해 포위망을 다시 뚫는데 성공했다. 연합군은 공중에서 남아있는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키려고 했고, 기갑군 대부분을 불능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8월 20일 밤 미군은 포위된 독일군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제116기갑사단과 제7군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미군은 독일군이 시도하는 반격을 격퇴하는 한편, 갇혀있는 대부분의 독일군을 공격했다. 제7군과 그들의 전차들은 항복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지역에서의 독일군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파울 하우서는 부상을 입은 채 후퇴했다. 이 전투는 팔레즈 포위전에서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포위망을 완전히 닫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 같이 보기 ==
* [[팔레즈 포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