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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5식·후3식 ===
 
8식 중에서의 앞의 5가지 식, 즉 [[육식|안식]]{{.cw}}[[육식|이식]]{{.cw}}[[육식|비식]]{{.cw}}[[육식|설식]]{{.cw}}[[육식|신식]]을 '''전5식'''(前五識) 또는 '''5식'''(五識)이라 하며, 뒤의 3가지 식, 즉 [[육식|의식]]{{.cw}}[[말나식]]{{.cw}}[[아뢰야식]]을 '''후3식'''(後三識)이라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8B%9D&rowno=3 前五識(전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ps=<br />"前五識(전오식): 유식종(唯識宗)에서 우리의 대경(對境)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을 여덟으로 나눈 가운데서,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의 5식을 총칭하는 말."}}{{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8B%9D&rowno=1 五識(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ps=<br />"五識(오식): 【범】 pañca-vijñāna 또는 오식신(五識身).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을 인식하는 5종의 심식.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 곧 5경에 대하여 따로따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는 작용이 있음."}} [[전5식]]은 [[색 (불교)|색]](물질)을 [[인식대상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인식대상]]으로 하는 [[심의식|식]](識)으로, 그 [[인식대상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인식대상]]들을 각각 [[색경 (불교)|색경]](색깔, 모양, 크기){{.cw}}[[오경 (불교)#성경|성경]](소리){{.cw}}[[향경 (6경)|향경]](냄새){{.cw}}[[오경 (불교)#미경|미경]](맛){{.cw}}[[촉경 (6경)|촉경]](감촉)이라 하며 이들을 [[오경 (불교)|5경]](五境)이라 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8B%9D&rowno=3 前五識(전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8%A4%EC%8B%9D&rowno=1 五識(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후3식 중 [[육식|의식]](意識)은 [[오경 (불교)|5경]](五境)에 [[법계 (불교)|법경]](法境)을 더한 [[육경|6경]](六境)을 [[인식대상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인식대상]]으로 하는 [[심의식|식]]으로 [[제6의식]]이라고도 불리는데,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에 근거하여 생겨나는 [[심의식|식]]이며, 다시 [[말나식]]은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근거하여 생겨나는 [[심의식|식]]이다.{{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556&DTITLE=%A4K%C3%D1 八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6%84%8F%E6%A0%B9&rowno=1 意根(의근)]".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ps=<br />"意根(의근): [1] 6근(根)의 하나. 전념(前念)의 6식이 멸하고, 후념(後念)의 6식이 일어날 의거가 되는 점으로 전념의 6식을 말함. 5식에는 5근이 있는 것같이, 의근은 특히 제6 의식의 근거할 데를 말함. 이를 의계(意界) 또는 의근계(意根界)라 하는 것은 『구사론(俱舍論)』의 말. 우리의 마음을 전념ㆍ후념에 나누고, 전념의 8식 심왕(心王)을 말함. 이것이 후념에 일어날 온갖 심적(心的) 현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근거라는 의미로 하는 말. 또 제7 말나식(末那識)을 제6 의식의 가장 가까운 근거라는 의미로 하는 말은 『유식론(唯識論)』의 말. [2] 22근의 하나. 6식과 의근과의 7심계(心界)를 말함."}}{{sfn|星雲|loc="[http://etext.fgs.org.tw/etext6/search-1-detail.asp?DINDEX=18606&DTITLE=%B7N%C3%D1 意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ps=<br />"意識: (一)梵語 mano-vijñāna。六識(或八識、九識)中之第六識。在西洋哲學中視之為「能把握客觀對象之心機能」。廣義言之,即吾人所有諸種經驗,從原始之感覺至高度之思考均包括在內。凡能統攝多種經驗內容之作用,皆稱為意識。至於意識與物質之關係,乃哲學上之核心問題,觀念論(唯心論)否定物質之獨立性,視意識(思考、精神)為一切之根源;反之,唯物論視意識為物質(存在、自然)之產物。佛教則將精神分為三:(一)心(梵 citta,集起),即精神之主體。(二)意(梵 manas,思量)。(三)識(梵 vijñāna,了別),即精神之作用。意識所附帶微細之精神作用(心所),雖有各種類別,但與心、意、識能完全把握對象之綜合性精神作用(心王)仍有其區別。狹義而言,意識即指六識或八識中之第六識。意識與物質界、現象界之關係,在大乘佛教,以唯識宗為典型代表,特別強調物質界為意識所現,此即佛教所謂之唯心論,而非存在論立場所謂之唯心論,乃係自實踐論立場來強調心之整體性,不主張心和意識為唯一之存在。故知佛教所謂之心,並無實體可得(無自性),此為佛教教義之根本原理。 ...<br />  要言之,第六意識乃八識中最猛利、最敏捷者,具有自由自在之能力,三界九地,一切迷悟昇沈之業,無一不由此意識所作。<br />
 又第七識為末那識,末那之梵語為 manas,意譯為「意」,思量之義,若採取意譯,則易與第六意識混同。然此二識於梵語原文中皆有「意識」之意,此因第六識乃以末那識為所依,故知第六識之所以稱為「意」者,即由「依意之識」而來;第七之末那識,其原文 manas,則表示「意即是識」,其識之本身即名為「意」。此乃兩者名義接近、所依與作用迥別,而一用音譯、一用意譯之緣故。"}}<ref name="글로벌-아뢰야식">[[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세계의 종교/불 교/불교의 사상#아뢰야식|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중기 이후의 대승사상 > 아뢰야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 />"아뢰야식 阿賴耶識: 알라야비즈냐나(alayavijnana)의 음사(音寫)로서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쓰며, 유식설은 우주만유전개(宇宙萬有展開)의 근본으로서, 만유를 굳게 보지하여 잃지 않기 때문에 무몰식(無沒識), 만유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식(藏識), 만유발생의 씨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유식설에 의하면 우리들의 경험은 모두 의식(意識)으로 간주된다. 외계에 있는 빛의 파동(波動)도 눈(眼:視力)이 없으면 빛깔이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빛깔이 나타나는 것은 눈(眼)이 원인(原因)이며, 외계의 빛의 파동은 조연(助緣)에 불과하고, 눈(主觀)에 갖추어진 힘의 요소만이 빛깔(客觀)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눈은 빛깔의 주관적인 입장, 빛깔은 눈의 객관적인 입장에 불과하며, 이 양자는 동일 존재인 것이 주객(主客)으로 분열된 모습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식(六識)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六境)을 역설하고, 이 6식의 구석에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이, 또한 이들 7식(七識)이 성립되는 근거로서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 역설되고 있다. 아뢰야식은 인간의 생명력에 타고난 유전적 요소나 여러 행위의 결과로서의 기억, 그리고 이에 의해 형성된 성격 등이 결합된 심리적 기체(心理的基體)로서 이에 의거해서 인식이나 판단이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 7식이 현재적(顯在的)인 데 대해서 아뢰야식은 잠재적이며, 과거의 여러 행위, 즉 업(業)의 결과가 종자(種子)로서 감추어지고 보존되어 인연(因緣)이 합쳐지면 또다시 아뢰야식에서 7식으로 현행(現行)하며, 또한 7식에 의한 경험은 업(業)의 형태로 아뢰야식으로 훈습(熏習)되며 종자로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잠재적인 아뢰야식에서 7식이 생기며, 이것이 주객으로 분열되어 인식이 성립되는 경과를 전변(轉變)이라 하고 아뢰야식에 의거, 현실의 현상세계가 성립되고 있는 상태를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라고 한다. 이같은 외계의 일체를 식의 현현(顯現)으로 보고 그 유식관(唯識觀)을 익혀 아뢰야식의 본질을 개조(改造:轉依)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유가행파의 입장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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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3계9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전5식'''(前五識)은 [[심 (마음작용)|심]](尋)과 [[불교 용어 목록/ㅅ#사|사]](伺)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감성적 인식]](感性的認識)이며, [[감성적 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인식대상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인식대상]]의 [[자성]](自性: 본질적 성질, 예를 들어, 빨간색의 경우 빨간색 그 자체 또는 노란색의 경우 노란색 그 자체)을 분별(지각)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자성분별'''(自性分別)이라고 한다.{{sfn|권오민|2003|pp=67-69}} 여기서, [[심 (마음작용)|심]](尋)의 [[마음작용]]은 거친 살펴봄의 [[마음작용]] 즉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작용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심구]](尋求: 찾고 탐구함)라고 한다. 그리고 [[불교 용어 목록/ㅅ#사|사]](伺)의 [[마음작용]]은 정밀한 살펴봄의 [[마음작용]] 즉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작용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사 (부정심소)|사찰]](伺察: 정밀하게 살펴봄)이라 한다.{{sfn|권오민|2003|pp=69-81}}{{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pp=[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350 350-351 / 583]}}{{sfn|곽철환|2003|loc="[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02057&categoryId=2886 심사(尋伺)]".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이에 대해, '''의식'''(意識), 즉 '''제6의식'''(第六意識)은 [[혜 (마음작용)|혜]](慧: 판단)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오성적 인식]](悟性的認識)이며 또한 [[불교 용어 목록/ㅇ#염|염]](念: 기억)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기억]](記憶) 또는 [[재인식]](再認識)이다. [[오성적 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헤아리고 판단하여[計度] 분별한다'라는 뜻에서 '''계탁분별'''(計度分別)이라 하며, [[불교 용어 목록/구#기억|기억]] 또는 [[재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기억[念] 또는 재인식[念]을 바탕으로 분별한다'라는 뜻에서 '''수념분별'''(隨念分別)이라 한다.{{sfn|권오민|2003|pp=6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