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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선심소를 오직 선한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날 수 있는 마음작용들의 그룹으로 정의하는 것'은 선심소의 개념이 좀 더 쉽게 와닿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적인 개략적인 표현 정도로 봐야 한다.</ref>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성질이 [[자성선]](自性善) 또는 [[상응선]](相應善)이면서 [[4일체]](四一切)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같은 성격을 가진 [[마음작용]](심소법)들의 그룹을 말한다. [[불교]]에서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이란, [[부파불교]]에서는 결과를 기준으로 보아서 편안하고 즐거운 과보[樂報]를 받을만한 것을 [[삼성 (불교)#선·불선·무기|선]](善)이라고 하며, [[대승불교]]에서는 현재{{.cw}}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것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4%A0&rowno=1319 善(선)]".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 순익(順益)에서 순(順)은 '편안하게 하다, 안락하게 하다, 도리(道理)에 따르게 하다'의 뜻이며,<ref>"[http://hanja.naver.com/small/hanja?q=%E9%A0%86 順]", 《네이버 한자사전》.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ref> 익(益)은 {{nowrap|'이롭게 하다,}} 돕다, 넉넉하게 하다, 향상되게 {{nowrap|하다'의}} 뜻이다.<ref>"[http://hanja.naver.com/small/hanja?q=%E7%9B%8A 益]", 《네이버 한자사전》. 2012년 2012년 10월 22일에 확인</ref> [[삼성 (불교)#선·불선·무기|불선]](不善) 또는 [[악 (3성)|악]](惡)은 현세나 내세에 자기나 남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성질을 가진 것을 말한다.{{sfn|운허|loc="[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5%85&rowno=39 惡(악)]". 2012년 9월 2일에 확인}}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 따르면, [[믿음 (불교)|신]](信, {{lang|sa|[[:en:sraddhā|<span style="color: black">sraddhā</span>]]}}){{.cw}}[[불교 용어 목록/정#정진|정진]](精進, {{lang|sa|[[:en:vīrya|<span style="color: black">vīrya</span>]]}}){{.cw}}[[
그런데 보통 전자만으로는 너무 개념적이어서 실제로 그 대상에 대해 잘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선(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전자의 방법으로 선을 정의하는 다음의 정의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 선(善)이란, [[부파불교]]에서는 결과를 기준으로 보아서 편안하고 즐거운 과보[樂報]를 받을만한 것을 선(善)이라고 하며, 대승불교에서는 현재{{.cw}}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후자의 방법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요소들을 일관하는 원리 또는 그 요소들이 의미하는 바를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당연히, 전자의 방법과 후자의 방법이 결합될 때 그 대상은 가장 잘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간에, 여기에 나열된 11가지 선한 마음작용들은 곧 대승불교, 특히 유식유가행파에서 "선(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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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신에 대한 반성)===
{{본문|
[[
<br><sup style="color: blue">12)</sup> 참(慚, hrī)심소는 ‘제 부끄러움’의 작용을 하는 심소이다. 자신과 법에 의지해서 현선(賢善)을 존경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심리작용이다.
<br><sup style="color: blue">13)</sup> 범부와 성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현덕(賢德)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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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 (마음작용)|행사]](行捨)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고 보는 견해가 있음
**** 그 근거로는, 자신과 [[평등 (불교)|평등]]하다고 보는 대상[所平等境]에 대해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기 때문이라고 함
*** [[
**** 그 근거로는,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는 대상[所慚境]에 대해 [[마음 (불교)|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기 때문이라고 함<ref group="주해">한역본과 한글본에는 분명히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참(慚)은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즉, 자신과 자신이 배우고 있는 선법(善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반성이다. 반면, 괴(愧)는 세증상(自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도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성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반성이다. 이렇게 볼 때, 한역본을 만들 때, '괴(愧)의 특수한 경우[愧一分]'를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로 잘못 번역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라는 번역이 정말로 맞는 것이라면,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기 때문에, 즉 자신과 자신이 배우고 있는 선법(善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게 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게 된다'라는 해석보다는 부자연스러운 논리로 보인다. 다만, 진정한 참(慚), 즉 진정으로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것, 즉, 진정한 모습의 '자신과 자신이 배우고 있는 선법(善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것'이란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는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이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라는 진술도 일정 납득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모자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비교 대상이 없는데 과연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이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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