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쇼다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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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ashoda Incident map - en.svg|thumb|300px|파쇼다 사건 당시의 아프리카 상황.]]
'''파쇼다 사건'''(~事件)은 [[영국]]과 [[프랑스]]간의 [[동아프리카]] 식민지 확보경쟁의 절정을 이루었던 사건이다. [[19세기]] 말,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원료와 시장을 확보한 후 남는 자본을 투자하려고 식민지 획득에 손을 걷었다. 이러한 정책으로 [[유럽|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힘을 키워 나갔다. [[데이비드 리빙스턴|리빙스턴]]과 [[헨리 모턴 스탠리|스탠리]]의 탐험으로 아프리카가 등장하자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로 진출, 영국은 [[케이프타운]]과 [[카이로]]를 잇는 [[종단 정책]](縱斷政策)을 펼쳤다. 이에 맞선 [[프랑스]]는 [[알제리]]와 [[마다가스카르]]를 이어내는 [[횡단 정책]](橫斷政策)을 열었다. 프랑스가 이내 먼저 [[파쇼다]](Fashoda: 현재 [[남수단]]의 Kodok)에 도착하여 [[프랑스의 국기|자국의 국기]]를 게양하자 영국이 철수를 명령하였고, 이 사건이 파쇼다 사건이다. 그러나 이내 프랑스의 양보로 손쉽게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