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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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6월 27일]] 부터 병이 위독하여 대신들이 [[경복궁]] 양심당에 입사하였으나 [[명종]]은 이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대신들과 약방 의원들이 손을 쓰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결국 다음날인 음력 6월 28일 [[축시]](오전 1시~3시)에 [[이질]]과 그동안 지속되어 온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경복궁]] 양심당에서 34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적정자인 [[순회세자]]가 있었으나 13세에 요절하는 바람에 [[명종]]이 승하했을 때는 왕실의 적통이 단절되게 된다. 결국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을 [[순회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위를 계승하게 한다. 이 자가 제 14대 임금인 [[조선 선조|선조]]이다.
 
묘호는 '''명종'''(明宗)인데, 명종 자신의 유지에 따랐다<ref>이 내용은 《선조수정실록》에만 나온다.</ref>.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강릉]](康陵)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