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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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
파주시
칠중(七重)은 현대 [[한국어]]로는 "일곱겹"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근방을 흐르는 [[임진강]]의 흐름이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추정되며, 고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고 불렀다. 실제로 지도를 보면 적성면 주변으로 임진강의 굴곡이 일곱개 안팎임을 볼 수 있는데, {{출처|날짜=2009-11-5|[[당나라]] 군사들은 칠중하의 굴곡진 흐름을 보고 마치 표주박이 굴러다니는 것 같다며 '호로하(瓠蘆河)', '표하(瓢河)'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 중성(重城)으로 이름을 고쳐 내소군(來蘇郡, [[경기도]] [[양주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에 적성으로 이름을 고쳐 적성현이 되었으며, [[1018년]](고려 현종 9년) [[장단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1062년]](고려 문종 16년) 다시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1106년]](예종 1년) 독자적인 현이 되어, 감무를 두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년) 현감을 임명하였고,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하여 [[한성부]]에 속하였다.
[[양주시]]의 남면은 본래 적성군의 남부에 있어서 남면이라 불렀으며, 양주군으로 편입된 뒤에도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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