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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군의 추격은 집요했다. 오지 끝까지 제 1방면군을 향한 추격은 이어졌고 제4방면군과의 합류도 저지하려 노력하였다. 그럴수록 홍군의 도피행렬은 오지와 첩첩산중으로 이어졌고 [[공군]]까지 동원한 국민당군의 탄압, 더위, 식량부족으로 도중에 많은 군인들이 죽었다. 그리고 농민들을 신병으로 충원하곤 했다.
 
대운하의 도하, 대설산을 넘는 강행군, 사천성에서 감숙성으로 향하는 대평원에서의 흑탕물과흙탕물과 기아로 극한의 위기를 자주 맞이했지만 기동력과 군사들의 헌신, 그리고 장개석 외의 기타 군벌 및 소수민족과의 타협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다. 1935년 10월, 368일의 행군 끝에 제 4방면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제 1방면군의 원호작전을 맡고 있던 제 2방면군도 11개 성, 18개의 산맥을 넘어 1935년 10월 [[감숙성]]에서 제 1방면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 [[주은래]]([[저우언라이]])와 [[주더]], [[린뱌오]], [[펑더화이]] 등이 이끄는 홍군 제 1방면군이 [[1935년]] 10월 [[옌안]]에 도착해 자리를 잡기까지 행군한 거리는 무려 9600킬로미터나 되었으며, 당초 출발자 중에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인원은 불과 7천 명뿐이었다. 홍군 전군의 병력이 자주 분산 와해되는 타격을 입었고 또 자주 신병을 충원하면서도 최종 목적지까지 살아남은 병사는 3만이 되지 못했다. 이는 [[장개석]]([[장제스]])의 공산당 섬멸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나를 반증하는 증거이다. 제 1군의 지도부와 노선 차이로 마찰을 빚고 다시 사천성으로 회군하려던, [[장궈타오]]가 이끄는, 1935년 후반 홍군의 최대세력이던 제 4방면군도 장개석의 집중타격 대상이 되어 2/3이 병력을 잃기도 했었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반(反)제국주의 등의 목표를 갖고 [[상하이]]에서 창립한 이후 15년 동안 중국 남부와 동부에서 이룩했던 공산주의 혁명의 성과를 모두 잃어버리고 첩첩산중에 움츠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