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위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66 바이트 추가됨 ,  3년 전
편집 요약 없음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주석 → 각주))
[[파일:General John Wickham, official military photo 1988.JPEG|섬네일|존 위컴, 전 주한미군 사령관]]
 
'''존 애덤스 위컴 2세'''(John Adams Wickham, Jr., [[1928년]] [[6월 25일]] ~ )은 퇴역한 미국의 군인으로 서울의 봄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시기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냈으며,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의 육군 참모총장|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 생애 ==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서울의 봄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시기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냈다.
 
=== 개인사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약 3개월 후인 1980년 8월 8일에 "한국민은 들쥐와 같은 민족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였다. <ref>LA 타임즈, 1980. 8. 8</ref> 또한 그로부터 19일 뒤인 8월 27일(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날)에는 "한국의 10월사태(박정희 암살 사건) 이후 미국의 대한 정책에서 가장 성공한 일 중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우리의 보람도 크다"고 하며 전두환 정권을 노골적으로 지지하였다. <ref>AP 통신과의 회견. 1980. 8. 27.</ref>
1955년 Ann Lindsley Prior 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세 자녀와 여섯 손자를 두었다.
 
=== 주한미군사령관 시절 ===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영화 《[[화려한 휴가]]》 상영 전에 영화사에 전달된 이메일에는 당시 자신은 광주의 상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광주에서 처음 군사 진압 작전이 개시된 걸 알고 놀라 한국군 고위 관계자들에게 즉각 항의했다고 주장하였다.<ref>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261815401&code=100100 존 위컴 前사령관 “80년 광주 비극 한국 국내문제”], 경향신문, 2007년 06월 26일</ref>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위컴은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수장과 주한미군사령관이 되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사후의 위험한 시기를 봉합하고 전두환 정권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ref>"한국의 10월사태(박정희 암살 사건) 이후 미국의 대한 정책에서 가장 성공한 일 중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우리의 보람도 크다" - AP 통신과의 회견. 1980. 8. 27.</ref>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에 사전관여하지 않았으나 <ref>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261815401&code=100100 존 위컴 前사령관 “80년 광주 비극 한국 국내문제”], 경향신문, 2007년 06월 26일</ref> 이후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발언으로 비난을 받았다.<ref>"한국민은 들쥐와 같은 민족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 - LA 타임즈, 1980. 8. 8</ref>
 
=== 육군 참모총장 시절 ===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임명으로 미국의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1987년 37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은퇴하였으며 두번의 [[은성 훈장]]과 [[동성 훈장]]을 받았다.
 
== 각주 ==

편집

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