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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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에 임명되었다. 현준호는 [[1931년]]부터 중추원 참의직에 있었기에 김신석이 뒤이어 들어간 셈이며, 두 사람은 나란히 광복 시점까지 연임하며 중추원 참의로 재직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에 나서 [[대화동맹]]에 가담한 바 있다.<ref>고원섭 편, [http://db.history.go.kr/front/dirservice/PJ/viewDocumentPJ.jsp?pLevel=3&pDatabaseID=pj_03&pRecordID=pj_03_0200&pSearchSetId=-1&pTotalSearchCount=0&pPosition=0&pSearchType=0&pSearchName=&pDirType=1&pQuery= 李完用의 後孫들, 8.15 前 그들의 功績은 이렇다!], 《반민자죄상기(反民者罪狀記)》(백엽문화사, 1949)</ref>
== 가족 관계 ==
== 친일파 명단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경제, 친일단체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사위 홍진기도 들어 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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