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츠 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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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1936년 하계 올림픽|1936년 베를린]]|멀리뛰기}}
{{메달 끝}}
'''카를 루트비히 ("루츠") 롱'''({{llang|de|Carl Ludwig ("Luz") Long}}, [[1913년]] [[4월 27일]] ~ [[1943년]] [[7월 13일]])은 [[독일]]의 [[육상]] 선수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멀리뛰기]] [[은메달]]리스트였다. 스포츠 정신의 영혼에 그의 활동들로 인하여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을 수상하였다.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1936년]] [[여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제시 오언스]]가 [[베를린]]에 도착하였던 때로 봐서 롱 자신이 멀리뛰기에서 군림하는 유럽 챔피언을 제외하고 그를 약간 걱정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와 100,000명의 관중들이 보면서 롱은 오언스와 악수를 하였다. 그는 그 거대한 [[미국]] 선수와 친구가 되어, 자신 나라의 정부가 [[아리안]] 인종 정책을 촉진하고 있음에 불구하고 그와 접촉하는 데 수줍어 하지 않았다.
 
롱이 올림픽 기록을 세웠을 동안, 오언스가 합격하는 데 거의 떨어졌던 유럽의 규칙들에 의하여 무시무시하게 되자 롱은 멀리뛰기 선발 시합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 결승전에서 롱은 오언스의 뒤로 밀려 은메달을 땄다.
 
한 밤에 롱은 선수촌에서 오언스를 찾아 오랜 사적인 이야기를 하여 장기적 우정에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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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은 지속적으로 육상 대회에 나가 [[1937년]] 멀리뛰기에서 7.90m의 개인 전력을 이루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 대학원을 마치고 [[함부르크]]에서 법률을 실습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는 징병되었다.
 
롱은 [[1943년]] [[7월 10일]] [[연합국 (제2차 세계 대전)|연합국]]이 점령한 [[시칠리아]]에서 부상을 당하여 3일 후에 사망하였다. 그는 모타 산타나스타지아 묘지에 안장되었다.
 
{{Authority control}}
{{기본정렬:롱, 루츠}}
 
[[분류:1913년 태어남]]
[[분류:1943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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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독일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분류:라이프치히 출신]]
[[분류:독일의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