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 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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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전반, [[요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의해 정복되면서 몽골 고원의 여러 유목민 부족들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12세기 후반에는 몽골 고원에서 씨(氏)를 중심으로 뭉친 씨족 집단들을 아울러 영역적인 지배와 군주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부족은 중서부를 중심으로 하여 독자적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던 [[나이만]]과 케레이트 씨족을 맹주로 해 다섯 씨족들이 연맹하고 있었던 부족 국가인 케레이트였다. 옹 칸의 아버지인 쿠르차스쿠 부이르크 칸은 [[타타르]] 부족의 일파를 굴복시키고 옛날 [[위구르]] 왕국의 수도 [[카라 발가슨]]을 근거로 하여 케레이트 왕국을 부흥시킨 인물이었다.
 
[[몽골비사]]에 의하면 토그릴은 7살이었던 [[1138년]]에 [[메르키트 연맹]]의 [[톡토아 베키]]와 톡토아의 아버지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갔다. 토그릴이 13세였던 [[1144년]]에도 토그릴의 할아버지인 마르쿠즈 칸 (또는 사리크 칸)이 [[타타르]] 부족의 일파인 아르치 타타르 씨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토그릴이 노예로 잡혀갔고, 그의 아버지 쿠르차스쿠가 [[오르혼 강]] 유역의 타타르 부족의 거점을 공격하여 토그릴을 구출하였다고 전해진다. 케레이트 왕국의 왕족들은 몽골 고원에서의 세력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나이만, [[메르키트]], [[타타르]], [[몽골 (씨족)|몽골]] 등의 다른 세력들과 합종 동맹을 반복하며 고원의 패자 자리를 노렸고, 토그릴은 그 전쟁의 중심에 섰다.
 
쿠르차스쿠가 죽은 후 토그릴은 동생 등의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케레이트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이 때문에 다른 형제와 숙부 [[구르칸]] ([[자무카]]가 아니다)은 나이만으로 도망하였다. 하지만 구르 칸은 나이만의 원조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거병해 토그릴의 군대를 격파하고 스스로 왕임을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