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에시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2번째 줄:
카지미에시 대왕은 분할대공 시대를 겪으며 끔찍하게 분열되어 있던 폴란드를 통일해 후기 피아스트 왕조를 연 [[브와디스와프 1세]]의 아들로, 그는 폴란드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묘사된다.
 
그의 국가 정책면에서는 일단 [[볼레스와프 대공]]에 버금가는 천재성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국제정치 문제에서 대단히 신중하고 능란하게 행동하였었다. 일단 브와디스와프 1세 사후 폴란드는 다시 타협적인 독립 상태가 되었는데, 그는 [[체히|보헤미아]]와 [[튜턴 기사단]]과의 타협을 택하여 일단 보헤미아의 [[실레시아]] 영유권을 인정하고, 대신 폴란드의 왕관을 포기하게 했다. 그리고 [[포메라니아]]의 독일 기사단에는 강경책을 썼다.
 
이어서 [[우크라이나]]의 영유권에는 1352년 리투아니아와 [[타타르족]]과의 충돌을 물리치고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를 병합하였다. 그러나 카지에미시는 갈리시아에 그리스정교 수좌 대주교구를 설립하는 것을 승인하였고, 이러한 자유로운 통치는 새 영토가 종교적으로 상당히 이질적인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통치 하에 놓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리투아니아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것에 대해 평화적인 개종운동을 펼쳐 헝가리와 룩셈부르크까지도 협조할 정도로 능란한 외교술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