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히데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66번째 줄:
* 총포를 소지한 채로 [[에도]]로 향하던 중, 우스이 고개(碓氷峠)의 검문소에서 에도에 입성하는 다이묘들은 총포를 소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며, 히데야스 또한 예외는 아니라는 이유로 제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도쿠가와 가문 내에서도 쇼군의 형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던 히데야스는 이 같은 처사에 격분하여 관리들을 성토하며 수하에게 관리들의 처단을 명령하였고, 놀란 관리들은 에도로 도망쳤다. 이를 전해들은 히데타다는 히데야스를 처분할 수는 없고, 단지 히데야스의 손에 관리들이 살해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사태를 수습하였다.<ref>『후쿠이 현사(福井県史)』 통사편 3</ref>
 
* [[게이초]] 5년([[1600년]]), 부친 이에야스가 중신들에게 누구를 후계자로 할 것인가 질문하자, [[혼다 다다카쓰]](本多忠勝), [[혼다 마사노부|마사노부]](正信), [[혼다 마사즈미|마사즈미]](正純) 부자 등은 모두 히데야스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히데타다를 지지한 것은 [[오오쿠보오쿠보 다다치카]](大久保忠隣)가 전부였다.<ref>「오오쿠보 가류서(大久保家留書)」.</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