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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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0년]] [[고려 의종|의종]] 24년 당시 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문신들과의 출유(出遊)가 잦았던 바 화평재(和平齋)에 행차하여 문신들과 늦도록 시주(詩酒)를 즐기니 경호를 위해 따라간 무신들은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견룡행수 산원(牽龍行首散員) [[이의방]], [[이고 (고려)|이고]] 등이 이 같은 차별대우에 대한 불평을 정중부에게 털어놓으니 중부 역시 쌓였던 원한이 폭발, 드디어 이의방, 이고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흉모를 꾸미게 되었다.
 
다음 날 의종이 문신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현원]]으로 행차하게 되었다. 이때 대장군 [[이소응 (무신1111년)|이소응]]이 문신 한뇌한뢰 등에게 모욕 받고 구타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 정변과 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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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0년]] [[8월 30일]] [[의종]]은 [[보현원]]이라는 절로 나들이를 나섰다. 왕은 무신들에게 오병수박희를 하도록 명했다.<ref name="chung126">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126</ref> 이때 정중부 역시 무신의 한사람으로 왕을 수행, 보현원까지 따라갔다.
 
한참 어울리던 중 대장군 [[이소응 (무신1111년)|이소응]](李紹應)이 한 젊은 군졸과 씨름을 하다가 지고 말았다. 이소응은 환갑이 다된 노장군이었다. 이를 본 문신 한뇌(韓賴)가 이소응의 뺨을 후려갈겼다.<ref name="chung126"/>
 
"이 늙은 무인놈아. 그래 [[대장군]]으로서 어찌 군졸놈한테 넘어가느냐. 하는 일 없이 녹만 받아먹는 좀도둑이로구나.<ref name="chung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