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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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개요 ==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의 고교 3학년생([[밀양공업고등학교]], [[밀성고등학교|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들과 기타 창원의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학생 조모(당시 18세), [[김해시]]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들의 동창생 남모 등 밀양연합 일진 조직원들이 여중생 자매중 학생을 약 일년 동안 집단 성폭행하고 피해자의 동생과 이종사촌의 금품을 빼앗은 사건이다. 이들은 피해 여학생 최모양 , 기타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 등을 집단으로 강간하고, 딜도 등 성기구들을 입수하여 고통을 주었다. 또한 카메라, 핸드폰, 캠코더 등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한 뒤, 발설하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 이들 피해자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나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들이 인터넷에 동영상과 사진들을 유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첫 피해자인 최모 양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본 최모 양의 친척들의 권고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처음 피해자 최양(당 14세, 울산시 중구)를 채팅으로 만난 김모군과 그의 소개로 최양 자매를 소개받게 된 박모 등이 성폭행을 했고, 그 뒤 확인된 것에 의하면 세종고 10여 명, 밀성고 4, 밀양공고 20여 명,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1, 김해지역 고교생 1명 등이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이들 가해자 중 전모(당 18세) 등 일부는 타 학생 폭행 혐의, 타 학생 강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가해자들은 [[2004년]] [[12월 6일]] 18:05경부터 [[창원시]] 중앙동의 모 PC방과 도서관 등 [[경상남도]]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내 30여개 장소에서 체포되었고, [[12월 7일]] 다른 가담자와 공범자들도 추가로 체포되었다. 처음 사건에는 41명으로 나타났지만 나중에는 75여 명의 추가 관련자가 드러났다. 모두 다 [[1986년]]생으로 나이가 같은 이들 가해자들은 지역 '일진'들과 취업 나가 있다가 만난 사이들로 취업 나간 애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시의원, 도의원, 고위 공무원인 밀양지역 갑부들의 자식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에 대해서만 10개월형이라는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과, 피해자 여중생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여중생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으로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고, 수능 부정 시험과 비슷한 시기에 터진 사건이므로, 고등학생에 대한 윤리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애초 알려진 41명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또 피해를 당한 일부 여중생들이 피의자 가족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해,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서기도 했다.<ref name="hanichu"/> 그러나 대부분 10년 이내의 가벼운 처벌과 훈방조치를 받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추가 가해자 75명에 대해서는 수사가 더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그밖에 사건 현장 당시 망을 보던 학생 몇인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로 범행에 동조, 가담하거나 목격, 혹은 범행을 도왔던 여학생들도 있었다. 이 중 심한 막말과 가해자 옹호,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 등으로 물의를 빚은 김모, 윤모, 진모, 진모, 황모 양 등의 실명과 이메일, 블로그, 싸이월드 등의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한때 물의를 빚기도 했다.
 
최모 양 자매와 사촌 노모 양 외에도 [[창원시]]에 거주중인 여고생 2명이 추가 피해자로 확인되었으나 이들은 수사협조를 거절했다. 피해자는 여중생 4명에 여고생 3명 등 7명이고 이들은 대부분 [[밀양시]]인근 지역인 [[울산광역시]]와 [[창원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경찰관들이 피해 여중생 최모양 자매에게 막말을 한 것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힘에 의해, 사건을 수사 중인 울산남부경찰서가 피해자 인권보호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경찰서장이 대기 발령되고, [[2005년]] 인권위원회 등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 전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