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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들 가운데는 철학으로도 역사학으로도 분류할 수 있는 저작이 상당한데, 실제로 그는 고대에는 일차적으로 철학자, 그 다음으로는 역사학자로 간주되었다.<ref name="ap7"/> 그는 자신의 조국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어 스파르타와 가까이 지내며 중간 입장에서 남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따라서 자신이 살던 급변의 시대를 직시하는 보기 드문 통찰력을 갖출 수 있었다.<ref name="ap7"/>
 
그 후 [[소아시아]]에서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귀국 후 [[엘리스]]에서 은퇴하였다. 저작으로는 [[헬라스의 역사]], [[아나바시스]], [[소크라테스의 추억]], [[키로파에디아]] 등이 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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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동생인 키루스는 [[팃사페르네스]]와 싸운다는 핑계로 페르시아 인 병사로 구성된 거대한 군대를 모았으며, 거기다가 그가 페르시아 병사보다 뛰어난 전사라고 여겼던 [[고대 그리스|헬라스]](그리스) 군대도 모았다. 대왕에 전쟁을 선포하기 전에, 키루스는 [[피시디아]] 사람들이 전쟁 상대라고 공언하였으며, 헬라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페르시아 대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어마어마한 군대와 싸우게 될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타르소스]]에서 헬라스 병사들은 키루스가 대왕을 몰아내려고 원정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키루스를 따르는 데 거부하였다. 그러나 [[스파르타]] 출신의 클레아르코스가 헬라스 사람들을 설득하여 계속 원정대에 남았다. 키루스의 군대는 [[쿠낙사 전투]]에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헬라스 군대는 선전하였으나, 키루스는 전사하고 만다. 그러자 얼마 안되어 클레아르코스 장군이 네 명의 다른 헬라스 장군과 함께 휴전 회의에 초대받았으나, 페르시아인들은 이들을 배신하고 장군들을 참수하였다. "[[일만 인(그리스)|일만 인]]"으로 알려진 이들 헬라스 용병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심장부와 가까운 적대적인 내륙 한가운데서 지휘자도 없이 버려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크세노폰을 비롯한 새로운 지휘관을 뽑았으며,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페르시아, [[아르메니아]], [[쿠르드]]를 지나 북쪽으로 [[흑해]] 연안의 [[트라페주스]]로 진군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용병대는 서쪽으로 가 고국 [[그리스]]로 귀환하였다. 그 곳에서 용병대는 스파르타의 티브론 장군의 군대에 들어가 [[세우테스 2세]]가 [[트라케]]의 임금이 되는데 도왔다.
 
크세노폰이 쓴 [[아나바시스]]('올라가기'라는 뜻.<ref>키루스 2세가 군대를 거느리고 저지대인 소아시아의 해안지대에서 쿠낙사 전투가 벌어진 [[티그리스 강]]과 [[에우프라테스 강]] 사이의 고지대로 행군한 것을 의미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기원전 3세기 전반)는 그의 크세노폰 저서 목록에서 '아나바시스'란 표현을 쓰고 있다. 크세노폰, [[천병희]] 역, '아나바시스', [[단국대학교]]출판부, pp.10~11.</ref>)는 그가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여정을 담은 자신이 쓴 기록이다. 이 저서는 후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떠날 때 지리서로 쓰였다.
 
== 망명과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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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
* 크세노폰, [[천병희]] 역, "아나바시스", [[단국대학교|단국대학교출판부]], 2001.
* 크세노폰, [[이은종]] 역, "키로파에디아", 주영사, 2012.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