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조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  12년 전
(→‎긍정론: 삼국지 후한서 등에는 41대 1천년이란 기록은 없습니다.)
== 기자조선에 대한 종합적 이해 ==
 
고조선의 발전과 관련하여 기자 조선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사서]]에는 주의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고 나와 있다. 그 연대는 기원전 12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중국 선진 시대 문헌에는 기자와 조선이 별개로 취급되었다가 진,한대 이후에 양쪽이 관련되어 동래설로 등장하는 만금만큼, 그 사실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많다. 남한 학계에서는 일찍이 기자 조선의 허구성을 논증하고 이를 부정해 왔으며, 북한 학계에서도 "대국주의 사상에 입각한 중국인들에 의해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 하여 이를 부정하고 있다.
 
현재, 기자 자체가 본래 왕을 뜻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칭호였다고 해석하는 견해, 기자 조선을 고조선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사회 내부에서 새로이 등장한 지배 세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예맥조선]]), 또는 동이족의 이동 과정에서 기자로 상징되는 어떤 부족이 중국의 은ㆍ주 교체기에 중국 화북에서 대릉하, 남만주를 거쳐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으로 이동해 와 정치 세력을 잡은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